[세부에서 살고보니] 떡볶이로 월 1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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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에서 살고보니 필리핀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볼 수 있습니다. SM, 산미겔, 졸리비, 아얄라, 로빈손, SM 같은 회사는 정말 놀라운 성장을 이룬 기업입니다. 이제 SM은 필리핀을 대표하는 최고의 재벌이 된 듯 합니다. 그러나 늘 이런 기업들을 보면 남의 이야기 같고 무척 거리감 있어 보입니다.

헌데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우리 한인의 성공스토리를 읽어보며 큰 위안이 되었고 우리한인들의 도전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목이 '필리핀에서 떡볶이로 월 매출 1억원'입니다. 안태양씨 이야기인데 우리 한인들이 낮선 땅에 와서 성공해 나가는 스토리에 제 스스로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약간의 눈물을 훔치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 세부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태양 스토리

안태양(31)씨는 2010년 마닐라 야시장에서 동생 안찬양(29)씨와 함께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창업 3년만에 월 매출 1억원을 달성했습니다. 당시 필리핀 1인당 국민소득은 2790달러(313만원)이었고 필리핀 방송, 신문, 잡지가 앞다퉈 인씨 자매 취재를 했습니다. 그녀는 고3때 부모님 이혼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약대에 가고 싶었지만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서울여대 경제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적성에 안맞아 재미가 없더라고요. 형편이 어려워 새벽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더 집중하지 못했구요. 성적이 좋을리 없죠. 올F를 받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새로운 도전으로 2008년 8월,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만원을 들고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명목은 어학연수입니다. 하지만 도피에 가까웠습니다. 한국만 떠나면 인생이 잘 풀릴거라 생각했다지만 현실적으론 구러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연말까지 4개월 간 술에 의지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결국 쓰러졌습니다. 스트레스와 영양실조였습니다. 그때 '여기서 죽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라고 생각이들면서 돈부터 벌기로 했습니다. 대학을 자퇴하고 필리핀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2년 동안 한인 학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했습니다. 다행히 한달에 200만~300만원을 벌었지만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해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동생을 필리핀으로 불렀습니다. 수중의 자금은 300만원 밖에 없었기에 가게를 내는 건 어려웠습니다. "가진 돈으로 인테리어 비용과 보증금을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한꺼번에 3개월치를 내야 하는 월세도 부담이었구요."

그래서 매주 금요일 열리는 야시장에서 한국 대표 음식 떡볶이를 팔기로 했습니다. 2010년 3월 첫째 금요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100이분을 준비했고 1인분에 2500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팔린 건 고작 2인분 이었습니다. 그래서 쓰지 못한 식재료는 모두 버렸습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매출은 1만원 언저리를 맴돌았습니다. 생계는 과외로 유지했습니다. 서러운 일도 많이 당했습니다. "15kg 가스레인지와 식재료를 들고 택시를 잡아 장에 갔어요. 기사에게 욕먹고 동생이랑 운 적도 있어요."


떡볶이 대신 김말이로 공략

장사 시작 후 3개월 째 '이렇게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장사'를 검색했다. 관련 책・잡지・사이트를 미친 듯이 읽었습니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떡볶이 99페소(2500원)'란 간판만 내걸었을 뿐, 가게 이름도 로고도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우쳤습니다. 한국인이 직접 판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서울시스터즈'라 이름 지었습니다. 다지이너를 고용해 캐릭터도 만들었습니다. 장터를 지나는 행인에게 떡볶이를 나눠주며 맛을 평가해달라 부탁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아이템을 잘못 선정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떡볶이가 현지인들이 싫어하는 요소를 다 갖고 있더라구요. 쫄깃하고, 찐득거리고, 맵고, 뜨겁고. 한류가 한창일 때라 신기해하며 먹긴 하는데 즐기는 메뉴로 이어지진 않더라구요." 결국 떡볶이는 서울시스터즈를 상징하는 메뉴로 한정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김말이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당면을 김으로 써서 튀긴 김말이는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손님에게 먹는 벅과 재료를 설명하니 흥미가 배가됐습니다. 장사 시작 후 6개월 째 하루 매출 100만원을 넘겼습니다.

이제 남은 건 원가 관리였습니다. 수익성을 올리려면 지속적으로 원가를 낮춰야 했습니다. "한국 슈퍼에서 떡을 사면 개당 200원 꼴이에요. 1인분에 떡이 10개만 들어가도 2000원이죠. 여기에 야시장 하루 임대료가 13만원. 전기, 수도세는 별도예요. 현지 기준으로 비싼 값에 팔아도 남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도매가로 재료를 수입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무작정 한인 슈퍼 앞에서 도매업자를 기다렸습니다. 제품 뒤에 있는 번호로 물류회사에 전화해 부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구입 물량이 적어 계약을 맺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계속 연락했고, 어렵사리 계약을 따내어 떡 매입가를 50원까지 낮출 수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매출에 원가 부담 인하까지 공격적인 점포 확장에 나서 2013년 7개까지 점포를 늘렸습니다. 2곳은 일주일 내내 나머지는 2일간 영업했습니다. 배달, 출장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달 매출 1억원을 달성했습니다. 월 매출 1억원을 달성한 그 해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왜냐면 사업이 성공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늘 허전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한국 음식을 맛보이고 싶은데 규모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떡볶이나 김말이가 얼마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식품 대기업이 어떻게 일하는지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때 중국 업체 'GNP 트레이딩'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왔습니다. 한국 음식 프랜차이즈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스터즈'의 사업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업 인수와 함께 안씨 자매 모두에게 억대 연봉을 제안했습니다. "딱 필요할 때 좋은 제안을 받은거죠. 다만 서울시스터즈는 넘기지 않고 폐업했어요. 브랜드를 계속 보유하고 싶었거든요." 안씨는 신사업본부장, 동생은 총괄 셰프가 됐습니다. 성공적이었습니다. '케이펍비비큐' 등 프랜차이즈를 새로 출시해 3개 매장을 냈습니다. 여기에 있는 K-Pup BBS는 사실 세부 아얄라 스타벅스 옆에도 있고 세부 젊은이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는 곳입니다.

사실 세부에도 안태양(31)씨 못지않은 많은 분들이 오늘도 열심히 새로운 사업세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떤분들은 현지인처럼 세부아노를 잘하고, 현지인과 어우러져 열심히 도전하시는 분도 보았고 규모가 무척 크게 성공적인 사업장을 가지신 분도 계시고 모두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떡볶이로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린 안태양씨. 곧 세부에서도 제2의 안태양씨 스토리를 소개할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