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샘'] 퀀텀 리프 (Quantum le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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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필리핀 세부에 들어와 산 지 3년 9개월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곳에 들어와서 세부 교민들을 위한 한인교회를 개척해서 섬기고 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한국과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기운이 빠질 때가 있기도 합니다. 때때로 빠른 시간 안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지 않는 것 같아 낙심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교회 설립의 근본 목적은 아니지만, 왕성하게 성장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하는 내 자신과 능력에 대한 비관적인 마음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이민을 와 어떤 기대를 갖고 사업체를 오픈하셔서 일하고 계신 우리 교민들이 많이 계십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한국과 달리 취직해서 수입을 얻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교민들이 작은 기업이라도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재정을 투자해서 가게를 열거나, 어떤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그 일들이 무조건 잘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기도 하고, 많은 교민들이 잘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인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부라는 교민사회의 특징인 거 같습니다.

필리핀에 들어오기도 쉽게 들어오지만, 돌아가는 것도 쉽게 돌아가기도 합니다.

중국의 극동지방에 서식하는 「모소 대나무(Moso Bamboo)」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농부들이 이 대나무의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싹이 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는 겁니다. 3년이 되었을 때 우리가 죽순이라고 부르는 작은 싹이 나서 약 30cm 정도 자라게 됩니다.

'이제 좀 대나무가 높이 자라는 것을 좀 보려나...'했는데, 대나무의 죽순은 4년째에도 30cm 크기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겁니다. 농부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낙심이 될 만한 일입니까? "이 나무는 병든 건가? 이 나무의 성장은 여기서 멈춘 것인가? 더 이상 큰 기대를 갖지 말고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5년째 될 때 기적 같은 일이 시작됩니다. 4년째까지 작은 키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죽순이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눈에 띄는 성장 정도가 아니라 폭발적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하루에 30cm씩 자라기도 하고 하루 최대 60cm에서 1m까지도 자라나는 겁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대나무는 평균적으로 20m의 크기로 자라고, 최대 40m의 높이로 엄청난 성장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성장하는 기간이 단 6주밖에 걸리지 않는 겁니다.

물리학에서 쓰는 '퀀텀 리프(Quantum Leaps)'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원자 등 양자가 에너지를 흡수해서 다른 상태로 변화할때 서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수준에서 급속도로 변하는 폭발적 도약'을 말합니다. 대나무가 성장하지 않았던 지난 4년 동안 아무일도 안 한게 아닙니다. 대나무는 뿌리를 땅 속 깊이 곳곳에 뻗치고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5년째 될 때의 퀀텀 리프를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어릴 때 피아노나 바이올린, 플롯 같은 악기들을 가르쳐 봅니다. 그런데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것은 정말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저희 아들도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다가 힘들다 하니깐 그만뒀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필리핀에 들어와서 교회를 설립했는데, 피아노 연주해 줄 사람이 없어서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아들에게 예배 반주를 맡겼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런 실력으로 예배 반주가 제대로 될까?'하는 걱정도 많이 되었었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교회 집회가 있어, 아들은 실력이 부족하지만 매일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년쯤 지나니깐 '어? 이젠 좀 치네?'가 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퀀텀리프와 같이 실력이 급성장하더니, 지금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정도가 된겁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데살로니가후서3:13)" 즉, 여러분이 어떤 기대와 꿈과 비전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크게 진전되지 않는 거 같고, 눈에 띄는 성장이 없는 거 같을 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은 퀀텀리프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알리바바 그룹을 창업해 15년 만에 중국 최고의 부자 자리에 오른 마윈(Jack Ma)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많이 힘들고 내일은 더 고통스럽지만 그 다음날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죠. 대부분 전날 저녁에 포기해 다음날 뜨는 태양을 못 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내일 아침에 뜨는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 '샘'은 세부교민들께 깊은 숲 맑은 옹달샘의 시원하고 청량한 샘물 한모금 같은 글을 전해드리고픈 바람을 담은 김제환(광명교회 담임목사)님이 집필해 주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