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짋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8:18)
저는 병을 다루어 본 경험이 많습니다. 체했거나 하는 작은 것부터 우울과 연약해진 몸과 정신병과 함께 중병에 걸린 분의 병을 치료한 적이 많습니다. 주님의 공급하심으로 직접 안수를 하여 주의 생명을 불어넣거나 멀리서도 중보 곧 그의 죽음을 가로 막거나 내 자신의 목숨을 주님 앞에 담보로 들이대는 무모한(?)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목회초기에 저는 우리 교회를 3차 병원이라고 말하면서 치유목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지금도 구원과 치유가 함께 일어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구원이 곧 치유와 동반하고 치유가 구원의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죄책감과 우울, 조급함과 충동 그리고 남을 맹렬히 비난하는 성격. 이런 부정적인 심리를 가진 사람이 바로 연약에 싸이고 그 연약이 병으로 연결이 되고 그 병은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래서 병이 무서운 것은 그 뒤엔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죄를 짓는다 안 짓는다 하는 것은 빛과 어둠의 이야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빛 가운데 있으면 죄가 없고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유지해야 하기에 사람이 죄라고 여기는 못난 짓거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싫어집니다. 당장 피드백이 따릅니다. 죄의 자리 곧 어둠과 사망의 종이 되어 있으면 연약해 집니다. 죄의식, 우울, 충동, 남을 비난하는 성격은 죄를 지은 죄인이 아니라 어둠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 닿지 않고 그의 영과 생명의 공급이 끊긴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나병이든 중풍병이든 열병이든 주님의 손이 닿든 말씀이 임하든 무조건 낫습니다(마8:16). 왜냐하면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의 연약과 병을 흡수하시고 다 짊어지시기 때문입니다. 이건 십자가의 사건뿐이 아니라 현재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주님은 현재의 부활과 생명(요11:25)이십니다.
우리를 아담 안에서 죽었을 때에 다시 살리시고 그 생명을 한 없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살리시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이 빌빌대며 약국과 병원에다 머리를 조아려야 할까요? 자신이 그리스도의 반대편 동네에 살고 있지 않나 영적인 주민등록을 확인하세요. 복음을 듣고 자신안에 빛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질그릇 같은 몸뚱어리 안에 보배가 들어 있음을 깨닫는다면 자신의 육체를 예수의 죽음에 내 던지세요. 우리를 죄와 사망에 다시 살리신 그 생명의 능력이 우리 몸에 나타날 것입니다(고후4:1-11). 그러면 연약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병 또한 남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건 제가 지은 얘기가 아니라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김상욱 _ CNS 월드미션 대표, 시인, 월간 한울문학 회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