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살고보니] 산업화와 민주화

산업화와 민주화.jpg 필리핀은 현재 민다나오섬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5/24) 자칫 세부도 계엄령이 선포될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예전 조국에 군인들이 정권 잡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추진한 산업화가 오늘의 대한민국의 틀을 잡았다면 얼마 전에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문재인 정부를 탄생케 한 것은 민주화 운동의 결실이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를 이루어 놓았지만 아직도 양쪽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로 가는데는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왜냐하면 양쪽의 사람들은 오로지 반대진영을 부정하는데에서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의 큰 발전은 지역주의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주의 못지않게 큰 과제는 이념간의 갈등으로 태극기와 촛불의 생각은 너무나도 달랐기에 이 다른 가치관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가 새 정부의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제가 과거 386세대(80년대 대학생)로 학교 다닐 때 운동권의 교과서는 다름 아닌 한길사에서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서두에 송건호 선생님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강대국에 의해 얼마나 일방적으로 요리되고 혹사당하고 수모 받았으며 이런 틈을 이용해 친일파 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애국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가중시켰는가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8.15가 도대체 어떻게 민족의 정도에서 일탈해갔고 그로 말미암아 민중이 어떤 수난을 받게 되었는가를 냉철하게 규명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인식'1권, 14쪽)

저같은 경찰가족으로서는 대학 다닐 때 처음 듣던 소리이고 일반대중은 해방은 대한독립이고 이제 조국이 일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우리나라를 세우게 되는 기쁜 소식으로만 학교에서 배웠었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자리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찾아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가히 고전이며 필수적인 교재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소개한다면,
1장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송건호, 미군정의 정치사적 인식/진덕규, 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김학준. 2장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오익환, 일제말 친일 군상의 실태/임종국. 3장 김구의 사상과 행동의 재조명/백기완, 이승만 노선의 재검토/김도현, 8・15를 전후한 여운형의 정치활동/이동화. 4장 해방 후 농지개혁의 전개 과정과 성격/유인호, 미군정 경제의 역사적 성격/이종훈. 5장 소설을 통해 본 해방 직후의 사회상/염무웅, 해방 후 한국 문학의 양상/임헌영

이 책은 운동권 학생들에게 ▲ 한국사회는 美제국주의의 식민지이며 ▲ 분단의 책임은 이승만 정권에 있고 ▲ 남한은 친일청산을 잘못했지만, 북한은 잘했고 ▲ 남한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으나 반(半)봉건사회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라는 사고를 키워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고의 틀로 보니 당시 정권인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세력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적 수준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반면 군사정부가 이루어 놓은 산업화는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1993년 세계은행이 펴낸 '동아시아의 기적' 보고서는 한국의 급발전한 원인을 경제 성장의 요인들 중에는 "성장의 공유를 이끈 제도적 기반"이라 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 성과를 최대한 골고루 나눠 줌으로써 내부의 경쟁과 정부의 리더십을 함께 고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는 정치적 외압을 받지 않고 경제발전계획을 수립, 실행할 수 있었던 경제기획원이나 정부와 시장을 긴밀히 연결시켜준 정부-경제인 회의 등이 "성장의 공유"에 기여했던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오래전에 코피노 어린이 재단에서 이 세부 섬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도 한인회 부회장으로 그분을 모시며 식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제가 우연찮게 박정희 전대통령을 언급했더니 갑자기 화를 내시더니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엄청난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내셔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시 우리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쟁의 갈등과 분쟁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역사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세부에 살다보면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을 ㅗ다른 나라보다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 듯하여 그런 부분은 참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각자 이섬에서 적응하며 뿌리내리기 바쁘기에 한국정치까지 관심 갖기에는 쉽지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헌데 미국 땅은 조금 다른 듯 합니다. 미주교포들 배부분은 산업화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예전에 미국땅을 밟으려면 어느 정도 경제력이 되어야 하고 또한 공부를 할 정도면 엘리트 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학위를 취득하고서는 조국의 대학의 강단이나 정부의 요처에서 일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일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도 군사정부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핍박을 받아 미국으로 피해 온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포들은 대체적으로 너무나도 다른 정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쉽게 정치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경우도 많음을 보았습니다. 저도 대학선배를 근 30년 만에 만났었는데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기 하다가 의견 차이를 보여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사이였다가 한순간에 일체 모르는 사이로 외면하게 되는 너무나도 슬픈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각차와 가치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이념의 차이가 서로를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바로 얼마 전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5/23)이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5만명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88년 7월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밝힌 이상적인 사회관은 '더불어 사는 세상, 그리고 먹는 것 입는 것 걱정하지 않고 정의롭고 신명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꿈을 가졌는데 민주화 세력은 우리 조국은 정의롭지 못하고 가난한자 부자가 함께 더불어 살지 못하는 나라이고 신바람 나는 사회가 안되고 가진 자 그리고 배운 기득권자들의 나라가 되었고 그 원인은 해방 후 기득권 친일청산을 못한 데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민주화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국민들이 오늘의 정의롭지 못한 세상의 원인인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한 나라가 수많은 이해관계와 이념이 있는 다른 집단들을 하나로 묶어 국민총화를 이루는 일은 결코 쉬운일은 아닌 듯 합니다.

세부 섬에 살고보니 이곳에서도 오스메냐 집안과 가르시아집안의 오랜 정치적인 라이벌 관계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정치는 어렵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세부에서는 그럼에도 상대를 존중하고 큰 보복을 하질 않는 모습은 나름 아릅다워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부가 모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자유화를 이루어 내는 선진 대한민국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꿈꾸어 봅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