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살고보니] 열등감

열등감.jpg 세부에서 오래 살고보니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상당수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살펴보면 한국인 H(47)씨는 현지인 마사지사인 A(20)와 내연관계를 가지다가 이 여인이 자신의 물건을 훔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폭행을 한 것입니다.

이에 현지인 마사지사는 자신의 남자친구(34)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필리핀 남자친구는 또다른 살인전문가를 불러 소음기 달린 총으로 한인 H씨를 살해한 것입니다.

물론 점인은 잡혔습니다. 단서가 된 것은 H씨와 A씨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세부에서 일어난 사건들 상당수는 이런 감정의 싸움이 출발점입니다. 사실 감정싸움은 어느 민족이나 별차이는 없지만 열등감이 많은 필리핀에서는 무시를 당한다는 것은 극한으로 가게 되는 일이 많기에 현지인들을 너무 쉽게 모욕감을 주고 무시를 하면 안되지만 우리 한국문화에서는 늘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조심하기가 쉽지만 않았기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물론 이런 케이스로 죽음을 맞은 사람이 H씨 한 분만은 아닙니다. 도대체 필리핀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는 무엇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까?


아들러의 심리학

어제는 세부의 대표적인 레디슨 블루호텔에 가서 다음주에 진행되는 행사에 대해서 호텔 행사담당자를 만나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제가 세부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과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과 세부아노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행사담당자가 깜짝 놀라면서 자신들의 언어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이제는 현지어로 대화를 하자고 웃으면서 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지인들도 영어는 외국어이기에 보이질 않게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필리핀 사람들의 내면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우리보다 엄청난 차이의 실력을 갖추었는데도 스스로는 영어를 더 잘해야 한다고 하는 심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필리핀이라는 나라는 식민지문화 400년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 내면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열등감과 반발감이 눌려 있기에 누군가가 자신들의 열등감을 자극하면 한순간에 용수철처럼 튀어 오릅니다.
그러하기에 필리핀 문화에는 Hiya(부끄러움, 수치)를 무척 중요시합니다.

곧 여러 사람들 앞에 한 개인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스스로 짙은 화장을 합니다. 그 화장은 밝고 언제나 미소가 가득하고 늘 행복한 미소의 모습으로 꾸미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들의 짙은 화장을 지워버리게 한다면 내면의 순수한 민낯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 모습은 '열등감'인 것입니다.

예전에 필리핀 교계 임원들을 모시고 한국탐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방문한 곳이 박물관이었는데 한국의 오랜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유물과 역사에 대해서 나누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전 이분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분이 질문을 하기에 우리 필리핀은 한국 고려시대 때 도대체 무엇을 했었을까? 다른 분이 답하기를 '무엇을 물어봐?', '그냥 우린 원숭이처럼 지냈지'라고 답변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분들은 적어도 필리핀 사회에서는 지성인들이었습니다.

요즘 한국 출판분야에 엄청 붐이 일어나고 있는 책과 작가는 심리학자 아들러(1870~1937년)입니다. 아들러는 1870년 2월 7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근교의 펜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산층의 유태인 곡물상이었고, 어머니는 전형적 비엔나 가정주부였습니다. 그는 5남 2녀 중 셋째였으며, 그의 형제 중 1명은 어려서 죽었습니다. 그는 차남이었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사실은 그의 이후 생애뿐만 아니라 이론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었습니다. 아들러는 어려서 매우 병약했고 합업에서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점은 그가 차남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를 극복하고 보상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생활양식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초기 몇 년 동안은 아동기의 유약함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으로 특징지어 집니다. 그는 결국 질병에 대한 보상으로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경험들은 열등감과 우월성의 추구라는 개념이 주가 되는 그의 독특한 이론체계가 가능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아들러는 '열등감', '인정욕구', '허영심'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간본연의 마음을 찾아보려 한 사람입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열등감 자체는 조금도 나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본디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며, 그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보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러는 이것을 '우월성 추구'라고 했는데, 우월성 추구란 향상되기를 바라는 것,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류사 전체를 보자면 과학의 진보도 '우월성 추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월성 추구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열등감인데, 인간은 누구나 더 나아지길 바람으로써 우월성을 추구하며,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우월성 추구는 열등감도 병도 아니며,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서장을 하기 위한 자극일 뿐입니다. 즉 열등감도 제대로만 발전하면 노력과 성장의 촉진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 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방향으로 열등감이 나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열등콤플렉스와 우월콤플렉스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월콤플렉스가 전면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콧대 높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 뒷면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려고 반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에게는 열등콤플렉스가 전면에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위축되어 있으며 늘 열등감에 시달리는데, 사실은 이것도 그 뒷면에 우월욕구가 잠복돼 있는 것입니다.

우월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열등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부 섬에서의 삶은 어찌보면 큰 축복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한국인들 내면에 있는 엄청난 열등감과 사회갈등들이 이곳에는 쉽게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분들도 심한 말을 하거나 폭력을 가한다면 쉽게 극한의 세계로 갈수가 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에 있는 열등감을 서로 서로 존중하며 세워줄려고 애쓰는 노력들이 이 사회를 훨씬 따뜻하고 건강한 사회로 이끌어 가고 있기에 우리는 늘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섬입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