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살고보니]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jpg 세부에 오래 살고 보니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이제 결혼하고 또 손자 손녀들을 낳아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세부 섬의 한인역사도 1세대 시대는(지난 30년) 서서히 저물어가고 2세대(새로운 30년)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곳에서 2세들의 영역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곧 세부도 정착 2세들이 주역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서서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 1864년 153년 전 러시아 연해주에 처음 이주해 현재는 유라시아 지역 20여 개국에 50만 명이 살고 있는 고려인들(카레이스키)의 지난 역사와 삶을 살펴보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현재 세부 섬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과 조건이나 환경이 전혀 다르기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난 150여년을 남의 나라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잃지 않고 벌써 5세대를 이어 퍼져나가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들의 애환과 그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이곳에서 정착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 한인들의 미래에 대한 작은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생각하여 고려인들의 지난 150년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고려인의 삶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말했습니다. 전날(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오찬에 이어 이틀 연속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이로써 그동안 잊혀져 왔던 해외 독립유공자와 이민자들의 삶이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당은 "국가가 성립되려면 국민, 영토, 주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준에서 1948년 건국이 자명하다"고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잊혀진 임시정부와 해외 이민자들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문대통령의 발언은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습니다.

고려인(高麗人)이란 한국의 옛 나라인 고려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흔히 카레이스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형용사형이며 러시아에서는 '고려사람' 이라고 합니다. 원래 고려인은 조선인으로 부르다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1988년 6월 전소고려인협회가 결성 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들은 조선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닌 국적으로 소련 사람이고 또한 자신의 언어와 문화도 일세기 이상 지나는 동안 이미 남과 북과는 이질적인 소련의 특성을 많이 띠고 있으며 남쪽과 북쪽의 것과도 다른 자신들만의 특수한 독자적 특성을 이어왔으니 그 어느 쪽도 아닌 '고려인'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려인이라는 호칭은 한반도의 분열이 낳은 특수한 역사의 산물인 것입니다. 한민족이 둘로 갈라진 비극은 호칭 문제에서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1931년 스탈린은 일본군이 연해주 침략을 위해 한인들을 첩자로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한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구실로 삼아 1937년 고려인을 포함한 소수 민족에 대한 강제 이주정책을 실시하여 지식인은 처형하고 예고 없이 화물차와 가축운반 차를 개조한 차량에 짐짝처럼 실어 매서운 시베리아의 삭풍 속 중앙아시아에 버렸습니다.

낮선 땅에 도착한 이들은 살기 위해 토굴을 파고 한민족의 강한 생명력으로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한인 집단 농장을 경영하는 등 소련 내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사는 민족으로 뿌리 내렸습니다. 고려인의 강제 이주는 소비에트 연방 내의 고려인 이주로, 1926년에 고안되어, 1930년에서 1937년까지 소련에 의해 시행된 첫 번째 민족 이주 정책이었습니다. 1937년 10월, 소련 극동 지방에 사는 거의 모든 한민족(171,781명)이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되었습니다.

고려인의 정체성을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개개인마다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외관상으론 한국인과 흡사하지만 사고방식은 일반적인 러시아인에 가깝고 현재 대부분의 고려인 4세, 5세들은 한민족이라는 혈통적 정체성만 가지고 있을 뿐,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현대 젊은층의 경우는 러시아에 완전히 동화되었기 때문에 모국어가 러시아어고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민족이 고려인이라는 자각은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의 경우 여권에 민족명을 표기하므로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들 대부분은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등 독립 후 새로 지정된 현지 공용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합니다. 스스로를 러시아인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지어를 배우기 위해 별로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고려인 젊은이들은 한국을 '할아버지의 나라'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커녕 고려말도 제대로 못 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지만 그래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일하러, 혹은 유학으로 오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중앙 아시아로의 이주 후, 고려인들은 주변의 사람들과는 다른 양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관개 시설을 만들고 지역 일대의 쌀 재배 농가가 되었습니다. 주변의 유목민과는 거의 교유하지 않았으며, 교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고려인들은 곧 한국의 전통 의상을 입지 않게 되었지만, 중앙 아시아인들의 옷보다는 서구의 복식을 채택하였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2002년에 약 470,000명의 고려인이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며, 그중 198,000명이 우즈베키스탄에, 125,000명이 러시아, 105,000명이 카자흐스탄, 19,000명이 키르기즈스탄, 12,000명이 우크라이나, 6,000명이 타지키스탄, 3,000명이 투르크메니스탄, 5,000명이 기타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세부 섬에 한인들이 정착 한지가 1세대(30년)를 넘어가면서 다음 세계를 예측해 봅니다. 현지에서 학교를 다녔고 영어와 현지 언어 그리고 현지 친구들이 살고 있고 또한 한국보다 더 친숙한 곳이 우리 2세들에게는 세부일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무조건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한국어를 거의 못하게 되고 미국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대학생이 되어서는 자신이 백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럼에도 자신들은 영어를 못하는 부모세대와는 다른 당당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워낙 미국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전세계 어떤 나라사람이 미국에 와도 곧 미국문화에 동화가 되어버리는 멜팅팟(Melting Pot) 문화를 가졌다고 합니다. 세부에 살면서 그러면 중국인들은 어떤가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들도 적어도 4대 5대가 이곳 세부 섬에서 뿌리내리고 사는데 그들은 중국인에 대한 정체성이 무척 강한 듯합니다. 그 기준이 꼭 언어만이 아닌듯합니다. 그들은 같은 중국인이라도 중국인이라는 자존심이 버려져 있다면 곧 현지인으로 취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한인들에게도 이곳 세부 섬에서의 이민 역사는 자존심의 역사이자 정체성의 시간일 것입니다. 곧 중국인들처럼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늘 강한 긍지를 가지고 현지인들을 도와주며 살아가려는 문화민족의 힘을 나타내어 가며 이곳에 우리 2세 3세들은 정착하여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