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샘'] 마지막 5분

마지막 5분.jpg 1849년 12월의 추운 겨울 러시아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작가를 비롯한 몇몇의 지식인들이 8개월의 수감생활 끝에 결국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몇 몇 사형수들은 사형을 앞두고 충격과 공포에 머리가 백발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형수들 중에는 스물여덟 살의 아직도 한창의 때를 보내야 할 젊은 사형수도 끼어 있었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던 날 형장에 도착한 사형수들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수물여덟 살의 젊은 사형수는 그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까?를 그 짧은 시간에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가족을 비롯해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 등 자신을 알고 있던 모든 이들과 작별의 기도를 하는데 2분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스물여덟 해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늘까지 살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곁에 있었던 다른 사형수들과 한 마디씩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2분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금 최후의 순간까지 서 있을 수 있게 해 준 땅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인생을 짧게 마감해야만 하는 아쉬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작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심키면서 마음으로 가족과 친구들과 작별을 하고 마지막 기도를 하는데 2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순간 "아, 이제 3분 후면 내 인생도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리곤 이미 지나가 버린 28년의 세월을 금쪽 같이 아껴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 마차 한 대가 급히 현장에 난입해 황제의 사형집행 중지명령을 전해, 간신히 목숨을 건진 실화가 있습니다.

이 것은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로 꼽히는 '도스토예프스키, 1821~1881)'에게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 날 밤 도스토예프스키는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난날들을 돌이켜보고 실수와 게으름으로 허송세월 했던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힐리는 듯하다. 인생은 신의 선물... 모든 순간은 영원의 행복일 수 있었던 것을 조금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그 이후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중노동과 함께 유배생활을 언도받고, 4년간 5kg이 넘는 족쇄를 차고 유배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유배생활 중에도 인생을 '마지막 5분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외에는 읽도록 허락된 것이 없어 성경을 깊이 읽었던 것이 훗날 그의 작품 속에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이 담기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유배생활 중엔 펜과 종이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그는 종이 대신에 머리 속으로 소설을 쓰고, 그 내용을 통으로 외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배생활을 마치고 창작활동에 매진하여 수많은 불후의 명작들을 썼는데, 그 중에 그의 저작인 '백치'에는 그가 사형 당할 뻔 했던 그 경험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거기서 한 남자가 사형대 앞에서고 나서야 1분 1초가 아깝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이야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는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기독교적 인도주의적 사상이 담긴 위대한 명작들을 남기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끝이라고 할 만한 그런 상황들과, 그와 같은 절망적인 순간들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마지막 5분의 연속이라 생각했더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이 그 순간이 우리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고 때문에 말하지도 못하는 3중고를 겪던 헬랜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그런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 청각 장애인 최초로 미국의 인문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후에 독일어를 비롯한 5개 국어를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비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되었을 지라도 그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희망의 문은 항상 열려져 있었던 겁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닫혀진 문만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또 다른 문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분명 누가 봐도 지금의 현실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마지막 5분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을 결코 비관하며 불평하며 원망하며 허비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안경이

있다면, 그의 인생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린 문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헬런켈러가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희망은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도 없다."
우리는 얼마 전부터 혹은 몇 달 전부터 또는 1~2년 동안 희망이 보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하고 미래가 막막한 기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헨렌켈러는 어려서 시력과 청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부터 늘 막막하고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그가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희망이라는 신앙 안에 거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소설 <백치>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5분의 시간을 '마지막 5분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의 인생에는 엄청난 변화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캄캄한 상황 속에서도 또 다른 희망의 문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에 결코 절망이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 '샘'은 세부교민들께 깊은 숲 맑은 옹달샘의 시원하고 청량한 샘물 한모금 같은 글을 전해드리고픈 바람을 담은 김제환(광명교회 담임목사)님이 집필해 주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