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살고보니] 필리핀 게이들

필리핀 게이들.jpg 세부에 오래 살고보니 늘 궁금한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필리핀에는 게이들이 많고 또 이 사회가 이들의 활동에 대해서 그렇게 관대한가? 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느라 다른 것을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 24년 이상이 세부 섬에 살고보니 그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보편적으로 이곳에 와서 궁금한 것들에는 한인사회의 현상이나 특징들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 제일 궁금한 사랑이 다름아닌 '왜 필리핀에 게이가 많은가'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정확한 답을 말하고 있지를 않았고 그래서 대학에 있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해도 그저 필리핀은 민주국가이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대답으로 우리 한인들이나 현지인들이나 별반 다름없는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학술지를 찾아보니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지역의 역사적인 고찰을 정확히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필리핀의 고유문화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역시 이 나라는 우리가 살았던 유교적인 배경의 나라와는 여러가지로 다른 부분이 많은 나라이면서 또한 그것이 필리핀만의 강점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어색한 게이들

그동안 세부섬에 살면서 게이들과 접촉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고 저처럼 선교사의 신분은 무척 어색하고 무슨 또다른 별종을 바라보는 관검으로 그들을 대해 왔었습니다. 처음 만난 게이는 오래전 아얄라 백화점 옆 골프 연습장의 직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척 친절했고 성실했지만 단지 여장을 하고 있는 부분이 나에겐 너무 어색해서 늘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두 번 째는 아얄라 백화점에서 게이들이 자꾸 시간을 묻는 척하며 접근할 때의 어색함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올랑고섬에서 선교사역을 하는데 마을에서 가끔 게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나의 세부섬 생활에 직접적으로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상황들이 아니었기에 그저 나의 삶의 먼 사람들이었었는데 4년 전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이제 내 수업에 게이들이 앉아있고 나의 학생들이 되면서 이젠 직접적인 나의 삶에도 한 파트로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처음 겪는 일이고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라 첫 강의 때 만난 게이들은 전혀 대화조차도 못했고 외면하기 바빴습니다. 단지 그들에 대한 제 소회는 '참 안되었다'라는 측은감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생긴 것은 여학생보다 더 여성스럽고 예뻤고 피부도 아주 하얀 천사 같았습니다. 단지 여장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 학생들이 특별히 튀는 행동들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제 강의를 들어주었던 부분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지난번 한 클래스에 게이 학생들이 4명이나 수강신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성격이 강한 학생들이고 화장도 요란하였고 수업을 늘 방해했고 수업시간에 화장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매시간 이유없이 밖으로 나가고 어쩔 때는 머리 고대기로 옆 학생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늘 수업이 끝날 시간이면 저에게 다가와 포옹을 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자기들 중에 누가 제일 예쁘냐고 늘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중 목소리가 제일 큰 학생은 애플 노트북 신형을 가져오며 그 안에 있는 자기 남편 핀란드 사람과 결혼한 사진과 핀란드 생활사진 결혼식 사진 등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세부섬에서는 이 게이들은 특이한 부류가 아님을 깨달아갑니다. 피부터의 색처럼 그냥 다른 컬러의 이웃이 되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일까요?


필리핀 게이의 역사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필리핀에는 게이들이 많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식민지 특별히 미국의 영향으로 필리핀에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이 일찍 들어왔기에 게이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한하고 다니느 것이 아닐까라고 현지인들이나 한인들 대개가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게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미국 영어 의미이고 미국과 스페인이 들어오기도 전에 부족국가 시절부터 'Babaylan' 그리고 'Bayonguin', 'Bayok', 'agi-ngin', 'Asog', 'Bido'라는 말로 종교적인 행사에 주술사역할을 해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을의 농사, 과학, 의료, 약, 문학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마을 추장 앞에서(Datu, 바랑가이 캡틴) 의식을 시행하고 가르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성을 초월해 여장을 하고 마을의 의식을 당당했던 것입니다. 이들 종교적인 의식을 담당하는 주술사는 여성들도 있었고 남자들도 있었지만 남자들은 여성분장을 주로 했었고 종교의식에는 특별히 남성들과 성적인 행위도 공동체로부터 허용이 된 행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위치는 혹 바랑가이 캡틴이 공석 중일 때는 이들이 마을을 다스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의식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의 다른 두개의 성의 세계를 중계하고 하나가 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으며 때때로 이들은 동성연애에 빠져있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다나오 같이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런 동성연애 의식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슬림 사회에서도 이런 동성연애의 의식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스페인통치가 들어오면서는 이런 원주민들의 의식은 허용이 되질 않았습니다. 왜냐면 이제 천주교의 시대로 넘어가는데 이런 소돔과 고모라 같은 원주민들의 문화를 허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페인 시대 들어서 동성연애 제사장들은 자리를 유지할 수가 없었지만 종교적인 영역에서가 아닌 이제 Fiestas(축제)때 미모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동성연애자들의 세계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따갈로그로 이들을 바끌라(Bakl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혼동되는' 그리고 '겁이 있는'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이들을 공식적으로는 몰아냈지만 축제 때 미인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또한 이제 교회 안으로 들어와 '남자성의'를 입으며 교회예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결국 없애려고 했지만 다른 형태로 필리핀 사회에 더 깊이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식민지 시절로 들어서게 되면서 이들은 처음으로 '게이'(Gay)라는 서구문회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며 미국은 게이라는 영역을 의학적인 용어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곧 병리적인 현상과 약한 정체성자로 분리를 해놓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전혀 다른 내용일 것입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의 영역은 연예계 쪽으로 자리가 잡혀갑니다. 그리고 LGBT라는 조직으로 필리핀에서 그들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그리고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줄여서 필리핀에서는 그들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필리핀은 게이들에게 가장 호의적인 나라가 되어 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의하면 필리핀 국민 73%가 게이들(LGBT)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라 하여 이런 구성원들은 어색한데 이곳 세부섬은 이들을 거부할 수가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정글섬으로만 알고 있는 이곳에서 게이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세부 사회의 한 부분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야할 우리 한인들에게 새롭게 배워 나아가야 할 또 다른 세계입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