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객선 ‘타이타닉 호(TITANIC, 1912. 4. 15 침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객선이자, 가장 유명한 침몰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월호(2014. 5. 16 침몰)’는 우리나라 온 국민에게 충격을 준 침몰선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배의 침몰일은 같습니다. 미국의 4월15일은 우리나라의 4월16일과 같은 날짜기 때문에 이 두 배는 102년이라는 시간 간격을 두고, 같은 날짜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당시 선장은 ‘에드워드 존 스미스(Edward John Smith, 1850~1912)’였습니다. 초호화, 세계 최대의 여객선 타이타닉 호는 승객 2,200명을 태우고 처녀 출항한 4일 만에 빙하와 충돌해 북대서양 한 가운데서 어이없이 침몰하게 됩니다. 이 사고로 탑승객 1514명이 죽고, 410명만이 구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스미스 선장은 가라앉는 타이타닉 호의 갑판에서 침착하게 승무원들을 지휘하면서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승객 중에서 어린이, 여자 그리고 그 다음에 남자 순으로 약자부터 탈출토록 했습니다. 그래서 생존자는 여성이 75%, 어린아이가 50% 그리고 남성의 생존율은 17%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먼저 살려고 허둥대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스미스 선장은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라고 소리치면서, 공포탄을 쏘기도 하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 배의 선장(혹은 선원)은 배의 기술적인 항해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다.
구조가 막바지에 이르고, 배는 거의 침몰해 갈 때 승무원들이 ‘선장님 이제는 탈출해야 합니다’라고 소리쳤지만, 스미스 선장은 이를 뿌리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찾으려고 배의 다른 쪽으로 가서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선장으로서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476명을 태우고 가던 세월호는 ‘이준석(1945)’이라는 사람이 선장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해 갈 때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별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제 자리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승객 중 대다수가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은 어른들의 그 지시를 따라 배가 완전히 기울어졌음에도 그 자리를 지켰던 겁니다.
구조 신고를 받고 출발한 해경이 구조하기 위해 침몰하던 세월호에 접근했는데, 팬티 바람의 어떤 사람이 최초로 구조되고 있었고, 작업복 차림의 성인들이 바로 구조되었습니다. 그들이 해경을 통해 구조된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사실은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최초로 탈출했던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승객과 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준석 선장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탈출했던 최초의 탈출자들은 14명의 선원들이었던 겁니다.
영국의 바다 사나이들의 전통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배와 함께 최후를 맞는다(The captain goes down with the ship)”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타이타닉의 스미스 선장은 정말 승객들을 구조하면서 최후를 맞아 오늘날 까지 진정한 선장이며 선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호의 최초 탈출자 이 선장은 476명의 승객들이 가라앉는 배에 여전히 남아 있는데, 심지어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여러 번이나 해 놓고, 본인은 팬티 바람으로 혼자서 탈출했던 겁니다. 스미스 선장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에 한국인으로서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력을 쌓아 선장 모자를 썼다고 다 진짜 선장은 아닌 겁니다. 선장이라면 정말 선장다워야 선장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큰 부자들이 전 재산을 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 우리나라에도 그런 훌륭한 분이 계셨습니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300년이 넘도록 이어온 ‘경주 최부자 家’입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부자였다고 하는데, 이 가문에 이어 내려오는 가훈(혹은 육훈)이라는 게 있습니다.
몇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즉, 재물에 대한 과한 욕심을 버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는 게 있는데, 흉년이다 보니 땅을 헐값에라도 팔아, 먹을 것을 장만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최부자는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내 배를 불리지 마라 고 후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하는데, 최 부자 집에서 약 40km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흉년 때에 곡식 창고를 열어 매일 죽을 끓여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그 주변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최부자 가문의 12대 손인 ‘최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재물은 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사방에 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이것이 함께 모두 잘 되는 방법입니다. 우리 한국에 이런 분들이 좀 더 많다면 우리 사회는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대기업의 3세가 물 컵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 일로 인해서 사회적 공분을 샀었습니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프랑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가치와 정신들일 것입니다.
간혹 중국의 유커족들이 한국관광을 하고 다녀가면 그들의 부와 걸맞지 않은 시민의식 혹은 비(非)매너 적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인상을 찌푸리게 됩니다. 그러나 혹 우리의 모습 속에도 그런 모습은 없는 지 돌아봐야 할 거 같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스미스 선장이 “영국인답게 행동하라”고 영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 “한국인답게 행동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던지 멋진 한국인으로서 살아가시길 소망해 봅니다.
이야기 '샘'은 세부교민들께 깊은 숲 맑은 옹달샘의 시원하고 청량한 샘물 한모금 같은 글을 전해드리고픈 바람을 담은 김제환(광명교회 담임목사)님이 집필해 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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