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살고 보니 이곳엔 싱글맘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단일문화권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세부에 살면 살수록 싱글맘은 필리핀의 보편적인 문화인듯하여 어색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한국과 비교를 해볼 때 필리핀 싱글맘 현상이 그렇게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는 듯합니다. 싱글맘도 엄연한 가족형태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필리핀의 가족제도에는 법적으로는 기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살아가는 조건에 피할 수 없는 자연적인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저도 '이제 세부섬에서 오래 살았나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가 활동해온 영역이 작은 섬과 빈민가 그리고 최근에는 대학 강당인데 그 어느 곳에서나 싱글맘은 언제나 존재하였지만 그 어느 누구도 한국처럼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는 엄마는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미혼모의 세계
필리핀은 미혼모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습니다. 2015년 필리핀 통계청의 자료를 살펴보면 2015년 태어난 아이의 53%는 호적에 들어오질 못한 아이들입니다. 특별히 마닐라는 6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 수가 제일 많은 가가얀벨리 지역만 가장 낮은 39%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숫자도 결코 낮은 숫자는 아닙니다. 반면 주요 무슬림 자치지구인 민다나오 방사모르에는 6.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부의 통계를 살펴보면 2015년 호적에 등록이 되지 않은 아기가 81,476명이고 그것은 태어난 아이 중 54.9%에 해당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 유독 싱글맘이 많은 이유를 살펴보면 1)천주교 국가 : 낙태를 허용하지 않기에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2)가난한 교육과 사회 : 피임에 대한 대대적인 사회교육이 약합니다. 중국과 인도는 강력하게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사회교육을 하는데에 비해서... 3)느슨한 사회분위기 : 사회 전반적으로 아버지 얺는 아이를 쉽게 받아들여 줍니다. 4)TV방송과 미디어의 문제점 : 필리핀 방송에서는 거의 주제가 사랑과 오락이 많고 또한 상당한 부분 게이들이 많이 출현하며 성에 대해서 다른 나라보다 가벼워지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크게 부끄러워하질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5)이혼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 천주교권 사회에서 이혼이 허용이 안되는 문화에서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주제가 무겁게 다가서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물론 결혼비용도 만만치는 않고 그래서 그냥 동거(Live-in, 세부아노는 Ipun)하며 살아보는 문화가 사회전반에 많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또 서로 맘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고 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전체에 깔려있는 필리핀 문화인듯 합니다. 6)생명과 가족을 중시하는 천주교 문화 : 개별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의 세계를 살펴보면 아이를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대다수 미혼모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려 하질 않고 오히려 대부분 자신의 아이가 생겼음을 기뻐하고 잘 키우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한국사회는 큰일이 났습니다. 올해 한국 합계 출산율이 1% 미만으로 지구상 최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7월5일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군 1.68명을 크게 밑도는 압도적인 꼴찌로, 지구상에서 출산율이 1% 미만을 기록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무이합니다. 저출산위원회는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22년 전에 한 해 출생아동이 20만명 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으로, 출산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존망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출산율을 높여야 하지만 필리핀과 달리 한국사회에서는 미혼모가 살아가기에는 무척 어려운 사회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미혼모는 2만40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미혼부는 1만1000명이었습니다. 미혼 부모는 법적으로 미혼이면서 1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사회는 이들에 대한 태도와 사회적인 분위기는 좋질 못합니다.
대구 미혼모가족협회 김은희 대표는 "2016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아이를 낳아 달라고 사정하는 게 국가잖아요. 그런데 미혼모는 아이를 키워선 안 된다고 해요. 아이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포기하라는 거죠.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면 유기가 되는 데도 말입니다. 아이는 저항할 수도 없고, 선택권도 없어요. 만약에 시설로 보내게 되면 200만원 이상의 지원금이 나와요. 엄마가 버렸을 때(입양을 보내면)는 지원을 하는데, 엄마가 키우면 지원금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 아닌가요? 미혼모가 내 아이를 스스로 키우는 것보다 타인에게 맡기라고 국가 정책 차원에서 부추기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자기 아니는 자기가 키우는 게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한텐 그렇지 못했어요.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부당한 건가요? 특히 아이한테 '몹쓸 짓'한다는 시선엔 정말 속생했어요. 앞에선 강한 척 싸웠지만 집에 가서 운적도 많아요."라고 인터뷰를 통해 토로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싱글맘들이 두려워하질 않고 전면에 나서며 자신의 말을 합니다. "한국은 아직 선입견이 많은 나라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분류하고 판단하는 것이 일상처럼 돼 있지 않나요. 그러나 저에게 가족이란 '희망' 그 자체예요. 극단적인 생각을 한 순간마다 저를 붙잡아 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였기 때문이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상 속에서 보여주고 서로에게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의 가족은 누구인가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꼭 필리핀 싱글맘들이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세부에 살면서 만났던 다양한 싱글맘들을 살펴보면 최고의 엘리트들도 있고 빈민가에도 있고 정글 같은 오지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필리핀 연예인들 중 상당수가 싱글맘이기도 합니다. Jennylyn, Jodi Sta. Maria, Andi Eigenmann, Ruffa Gutierrez, Phoemela Baranda, Vina Morales, Denise Laurel, Aiko Melendez, Valerie Concepcion, Katrina Halili, Sheryl Cruz, Ara Mina, Pops Femandez, Sunshine Cruz, Jean Garcia 등등 필리핀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연예인들입니다. 제 직업이 선교사이다 보니 세례를 주는데 기억에남는 이가 싱글맘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둘째 아이는 또 아버지가 다른 여성으로 산칼로스 대학을 나온 인재였습니다. 현재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미혼모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나온 희생이 아닌가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사회적 문화와 관습보다 생명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모든 사람들이 차별없이 사회의 동일한 구성원으로 받아주며 함께 밝게 살아가는 필리핀의 싱글맘들을 바라보며 우리 한국의 어두운 유교사회 속에 생명을 죽이고 또한 다른 나라로 입양을 보낸 모습들과 비교해 볼 때 필리핀 사회가 어떤 면에서는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닌가라고 생각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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