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살고보니] 식구(食口)

식구(食口).jpg 세부섬에 살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수많은 우리 한인들의 밝고 아름다운 세상과 어려운 처지에서 살아가는 힘든 삶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가끔 구치소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는 생면부지의 분들이신데 연락한 이유는 도와달라는 내용입니다. 며칠 전에도 전화가 왔는데, 이분은 전에도 한번 현지 구치소에 구속이 되었던 분으로 이번에 다시 구속이 되었는데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그의 친형에게 전화를 하니 수차례의 시도에도 이번에는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벌써 아주 오래전에 절도 마약사범으로 구속이 되어 어렵게 어렵게 가족들이 재판비용을 대고 감옥에 있다 풀려나왔는데, 또 다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에 체포가 되었나 봅니다. 세부 구치소에 가보면 수많은 가족들이 대부분 음식물들을 준비해서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습니다.

나라를 떠나 가족들의 세계를 살펴보면 서로에게 무관심도 좋지 않지만 어떤 때는 지나친 사랑도 해로울 때가 있지를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 세부구치소에서 알게 된 한인들중에는 부모가 지나친 애정으로 스스로 살아가질 못하고 연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양육하며 갖는 최종 목표는 내 자녀가 이 힘든 세상을 스스로 독립하며 살아가게끔 도와주는 일입니다. 이 목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살아가며 종종 부딪치는 어려운 일들이, 자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경우에도 스스로 이겨 나아가게끔 참견과 보호를 억제하고 견뎌 내는 부모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젊었을 때 스스로가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 부모에게 의지한 경우가 참 많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저를 바꿔갔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가던 저만의 채찍은,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을 만큼 제게 어려움이 닥칠 때, 더 의연한 척 연락드리고, 부모님 주변을 챙기고, 용돈까지 챙겨드리려 노력하고 했는데 그렇게 매달리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의연한 척(?)하던 제 행동이 저를 좀더 독립적이고 스스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자식이 있습니다. 항상 '이 아이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결론은 스스로 살아가게끔 혹독하게 도와주지를 않았을 때가 우리 아이가 오히려 더 강해져 갔던 경우를 돌이켜봅니다.

필리핀 자녀 양육 문화는 지나칠 정도로 자녀들을 끔찍히도 사랑해서 대부분 등하굣길은 다 부모님들이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 등하굣길을 감당하는 도우미(이때, 야야 세부아노)들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립학교 중 최저 빈민층들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통학길을 그것도 혼자서 걸어다니는 모습을 종종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의 대 스타인 복싱 챔피언 파퀴아오도 어릴적부터 스스로 강해진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는 가족을 위해 길거리에서 가판을 하며 가족의 생계도 책임지며 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신문은 홍콩영화배우 주윤발이 자신의 재산 8천억원을 사회에 기증하며 본인은 현재 월 용돈 11만원 정도로 살아간다고 보도했고 그의 꿈은 인생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모인 우리들은 자녀들이 어디서나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모진 고생을 모르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가장 행복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변변찮은 찬과 밥을 앞에 놓았더라도 웃으며 행복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식구'의 행복에 공감할 수 있게 교육하는 거시. 그것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을 알게 하는 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부에서 혹여 어려운 상황에 맞닥트려 계시더라도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행복한 시간을 통해, 비록 오늘은 혼자지만 가족과 행복한 식사를 함께 할 내일을 기대하며 파이팅하시길...

필자는 25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