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호텔리어의 요람! 세부에서 뿌리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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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요리학교 아이스캄(ISCAHM) 이사장, 한스조오지 스칼렌버지(Hansjorg Schallenberg)

국제요리학교 아이스캄(ISCAHM, 이하 아이스캄) 이사장인 한스조오지 스칼렌버지(Hansjorg Schallenberg, 이하 Mr.한스)씨를 만난 것은 아이스캄 졸업식 장에서였다. 그는 졸업에 들뜬 학생들에게 마지막 연설 중이었다.


근면과 성실, 정직은 호텔리어의 기본

"지금 학생들은 열정에 휩싸여 있습니다. 내가 19살 때 바로 여러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나의 스승은 내게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수십년 전의 조언이었지만, 나 역시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같은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경력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당부하는 것은 단 네가지입니다.

먼저, 회사에 지각 혹은 결근하지 마십시오. 필리핀 사회는 지각과 결근에 너그러운 편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이유에도 늦거나 회사를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호텔은 그곳이 필리핀에 있던 뉴욕 한복판에 있던 호텔 그 자체입니다. 지각과 결근을 하지 않는 것은 세계인을 고객으로 하는 호텔리어의 기본 자세입니다.

둘째, 야근(Overtime work)을 즐기십시오. 야근은 당신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좀 더 빨리 더욱 숙련된 조리사(Chef)로 단련시키는 즐거운 길입니다. 생각의 폭을 넓게 갖고 일을 즐겁게 보내길 바랍니다.

셋째, 정직하고 당신을 내보이는 조리사가 되십시오. 항상 모든 일에서 사람은 정직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실력을 우선하는 일입니다. 또한 당신의 동료가 혹은 당신의 선배나 후배가 당신이 아이스캄에서 배운 당신만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공개하여 가르쳐 주세요. 요리는 개인의 일이 아닙니다. 평생 퍼트너십을 가져야 하지요. 당신은 당신의 노하우를 그들에게 빼앗기는게 아니라 그들과 공유하면, 당신 팀의 좀더 업그레이드 된 노하우로 탄생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중략."

놀라웠다. 스위스 출신 노장 조리사 Mr.한스는 한국의 중장년층이 들어왔던 사회적 가치관을 2014년 현재를 사는 아시아의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있었다. 과연 그들에게 Mr.한스의 당부는 어떤 기억으로 자리매김할까.
Mr.한스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스위스 호텔학교를 졸업한 뼈 속부터 호텔의 생리가 몸에 베인 마스터 쉐프다.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그는 1987년부터 5년간 일본의 힐튼 호텔체인의 오사카, 나고야 호텔을 설립할 때, 식음료부분 총괄 지배인으로 부임하면서 아시아에서의 호텔 인생을 시작했다. 그후 싱가폴 힐튼 체인의 설립에 참여했고, 마닐라 상그릴라 리조트 세팅작업에 까지 이르렀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해외의 국가들을 떠돌아 다니는 삶에 점점 몸이 지치고 있음을 느꼈죠. 그래서 한곳에 정착하는 삶을 구상하면서 2003년 퀘존시티에 국제 호텔요리 전문학교 아이스캄을 설립했습니다."

그가 현장업무에 피로를 느꼈지만, 필리핀을 떠나지 않은 것은 아직 호텔리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함을 아쉬워 해왔고, 점차 호텔리어라는 직업에 대해 갖는 사람들의 관심과 자긍심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교육 사업이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단 8명의 학생으로 '아이스캄' 첫 걸음

마닐라 퀘존 아이스캄의 첫 입학생은 단 8명뿐이었다고 한다. Mr.한스는 그때의 기억이 큰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학생수가 임직원 수보다 적었지만, 우리는 의욕을 가지고 가족같은 분위기로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때의 그 학생들이 지금 필리핀 현지 혹은 해외 호텔에서도 중견의 포지션으로 근무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8명의 입학생으로 시작된 아이스캄은 이제 세부와 팡팡가에 까지 3개의 브런치 학교에서 수백여명의 호텔인재를 양성해내고 있다.
그는 또한 그의 학교에 들어온 첫 한국학생에 대한 기억도 놓치지 않았다. "첫 한국인 학생이었던 그녀는 성직자인 수녀였어요. 나를 찾아와 아주 서툰 영어로 '빵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했어요. 수업 과정에서도 그녀는 영어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교사들을 찾아다니고, 종이에 강의 내용을 적어가 다음날 사전을 찾아 번역해오는 열의를 보였답니다. 그녀의 노트를 엿보면 영어보다 한국어가 많아 우리가 알아보기 힘들었지요. 하하"
그렇게 공부한 한국인 수녀는 지금 파푸야 뉴기니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봉사로 빵을 굽고 있다고 후일담까지 전했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호텔리어를 꿈꾸는 한국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한국학생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랑스럽게 졸업을 해서 학교를 떠나지만, 간혹 도중에 포기하는 학생도 보입니다. 안타깝죠. 한국학생들은 영어를 너무 민감하게 생각해서 그런 문제가 있다고 보아요. 우리 학교는 실습 위주의 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혹 영어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교수들과 주위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몸으로 익히면 전문 조리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첫 한국인 학생이 그 증거입니다.
그 수녀님의 영어는 아주 서툴렀지만, 졸업할 즈음 맛보았던 그녀의 페스츄리는 엑설런트였으니까요."
활짝 웃으며 인터뷰를 마친 그는, 지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컨설팅을 도와줄 스케줄이 이어진다며 바삐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