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어린이들, 아라우 전사들을 만나다

타클로반 아라우부대 전격 방문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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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1일 새벽, 3시. "일어나자, 얘들아! 군인 아저씨 만나러 타클로반 가야지."
깊이 잠든 줄 알았던 아이들이 모두 부스스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우리 집 네 아이들은, 간밤 머리맡에 놓아둔 가방을 챙겨, 쪼르르 집을 나섰다. 택시로 이동하는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했다. 모두, 어떤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의 외출인 까닭일 테지.
타클로반으로 가는 길, 하늘이 환하게 밝아왔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여전히 많은 집들이 철골을 그대로 드러내고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그 속,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짐작하는 사이, 비행기가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했다.
아라우 부대의 버스는 6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서 내린 늠름한 장병이 경례를 하자, 아이들이 답례를 했다.
버스는 부대 안, 체육관 앞에 었다. 체육관 전면에는 "피를 땀으로 갚는다."는 표어가 적혀 있었다. 6.25 전쟁 당시 필리핀 참전 용사들의 은혜를 타클로반 복구에 흘린 땀으로 갚겠다는 것을 표어로 적어놓은 것이다. 일행은 간단히 기념촬영을 하고, 숙소로 안내받았다.
아라우 부대 이철원 단장은, 20명 이상이 머물 수 있는 게스트룸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게스트룸은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이 사물함과 간의침대로 구성되며, 각 실에 10명이 투숙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며, 에어컨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창문과 2개의 문을 갖추고 있어 비교적 쾌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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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우 부대에는 현재 300여 명의 부대원이 체류 중에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1진이 돌아간 뒤, 2진으로 온 대원들도 일부 교체가 되었으며 일부 대원들은 현재까지 8개월이 넘는 기간을 체류 중에 있다고 했다. 식사는 밥차를 이용해 준비를 하는데, 이 밥차는 한국에 4대뿐이던 것으로 그중 2대가 아라우 부대에 와 있다고 했다.
밥차는 한번에 10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규모라고 했다. 부대의 식당도 숙소와 같은 규모의 컨테이너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략 한 컨테이너에 20명 정도가 식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밥은 한식으로 국과 찬이 나왔으며 밑반찬이 3가지 곁들여졌다.
모두 한 목소리로 "집에서 먹는 밥보다 낫다"며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한 줄로 열을 지어 빈 식판을 들고 설거지를 마친 뒤, 일행은 부대 안부터 견학하였다. 아라우 부대는 500여 명이 체류할 수 있는 규모로 구성되었으며, 숙소와 식당,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는 천주교 예배당과 기독교 예배당, 불당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여가 시설로 노래방과 컴퓨터실, 체육실을 겸한 강당이 있었다.

기지 견학을 마친 일행은, 아라우 부대에서 직접 제작한 홍보 영상을 보았다. 지난 7월 방문시 보았던 영상보다, 6.25 참전 용사들에 대한 내용이 강화되어 있었다. 6.25 참전 필리핀 용사들의 청년 시절 사진과 세월이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된 사진이 연이어 나오자, 모두 눈물을 찍어냈다. "피를 땀으로 갚는다"는 문구가 가슴에 깊이 와 닿았던 것일 테다. 이철원 단장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느꼈냐고 묻자, 아직 어린아이들은 "태풍이 무서워요." 정도로 대답하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한편, 이렇게라도 보여주는 기회를 가진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한국에도 흔히 병영 체험 행사들이 있지만, 아마 타클로반과 같지 않을 것이다. 한 병사는 너무 어린 친구들이 온 것이 아쉽다면서도, 이렇게라도 경험을 하며 알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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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에 올랐다. 아라우 부대원들과 함께 간 곳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학교 건물. 아라우 부대는 그간 40여 개의 학교와 공공시설 재건을 완료했으며 현재도 재건 사업이 진행 중에 있었다. 동행한 아이들이 너무 어리지 않았다면, 원래는 공사 현장에서 부대원들을 돕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아직 오전이지만, 벌써 따가운 햇볕이 정수리를 내리쬐었다. 타오르는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장병들은 폐허가 된 학교의 지붕을 얹고 부서진 벽을 보수하고 창문을 새롭게 설치했다. 아이들은 마냥 이 일이 즐거운 놀이였다. 부서진 건물을 오가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공사 현장에서 땀 흘리던 장병들도 한번 웃었다.
우리는 아라우 부대의 홍보관에게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 세부에 많은 유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 아라우 부대의 청년 장병들과 땀을 흘려본다면, 아마도 한국에 대한 자긍심으로 더 열심히 공부에 임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라우 부대 홍보관은 이곳까지 찾아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고 답해주었다. 실제로 마닐라와 한국에서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고 있지만, 세부에서 아라우 부대를 방문한 교민은 우리가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아라우 부대가 재건한 학교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일행은 공사 현장을 뒤로 하고, 완공된 학교로 향했다. 공사 현장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해당 학교에서는 벌써 정상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일행이 도착하자, 학교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들은 마침 시험기간 이었다. 시험을 치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 운동장으로 몰려나와 고무줄놀이를 했다. 남자아이들이 주도가 된 고무줄놀이는 우리나라의 그곳과 비슷하게 '깍두기'도 있었다. 한 아이가 줄을 뛸 때마다, 구경하던 일행들이 조마조마 손에 땀을 쥐고 탄성을 질렀다.

오후에는 타클로반의 흑사 해변을 방문하고 아라우 부대가 운영하고 있는 한글학교에 다녀왔다. 한글학교는 초등학생부터, 중고생, 일반인을 위한 수업으로 분화되어 운영되고 있었는데 인기가 좋다고 했다. 또한 일반인 학생들 중에는 2~3개월만에 읽고 쓰고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한국어를 구사하는 현지인들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한글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라우 부대 대원은, 아이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다만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호소했다.
한글학교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학교를 둘러보았다. 아라우 부대는 학교를 재건할 때 반드시 놀이터를 함께 만들어 주었다. 애초에 학교에 없었던 시소와 그네, 정글짐은 학교 아이들뿐만 아니라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는 인근 지역 아이들까지도 찾아노는 놀이터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했다.
일행은 다음날 일정을 위해 부대 밖에 마련된 숙소에서 하루를 정리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