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살고보니] 설국 (雪國)

설국

세부에 살고 보니 지난 26년간 열대의 뜨거운 태양속에 내자신도 모르게 열정적이고 밝고 감성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때론 추웠던 겨울에 친구들과 눈이 가득한 광활한 설국의 들판을 누볐던 한국에서의 젊은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금 필자는 中島美嘉(나카시마미카)의 '雪の華'란 곡을 듣고 있습니다. 2004년 방영된 소지섭 임수정 주연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주제곡으로 박효신 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노래입니다.

'今年最初の雪の華を 二人寄り添ってながめているこの瞬間に幸せが溢れ出す'(올해 첫 눈의 꽃을 둘이 가까이 붙어서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행복이 넘쳐요) 중간에 나오는 이 가사는 그 추운 겨울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며 희망을 꿈꾸는 겨울문화를 되새겨보는 아름다음이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 읽었던 가와바타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은 그 추웠던 겨울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찾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또한 이 열정적인 열대의 문화와 대비를 통해 더 풍성한 내면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설국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로 평가받는 <설국>의 첫 세 문장입니다. 1968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와바타를 지명하며, 그 결정의 가장 큰 이유로 <일본인의 마음의 정수를 뛰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서술의 능숙함>을 들었습니다.

「설국」은 눈 지방의 정경을 묘사하는 서정성 뛰어난 감각적인 문체를 우선 특징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시마무라와고마코(그리고 요코)의 사랑과 애정관계에 대한 서술 파트와 시마무라가 머무는 고장에서 그가 묘사하는 일본 눈의 도시의 정경이 생생히 드러나는 풍경 묘사 파트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소설은 명확한 스토리가 없이 심리의 변화와 그 묘사에 집중해 순간의 사건 사건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함께 살던 조부모마저 세상을 뜬 후 어린 나이에 고아로 살아야만 했던 가와바타야스나리 자신이 평생 벗어날 수 없었던 죽음의 그림자와 고독, 허무 의식을 그대로 대변하는 존재로 표현합니다. 그런 까닭에 결국 시마무라는 현실 세계로, 고마코의 사랑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실상 인간은 원래 그렇게 고독하고 허무한, 유한한 존재, 무엇보다 자연과 분리되어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마코와 요코 앞의 시마무라, 바로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는 유한하고 고독한 그 모습이 바로 「설국」이 그려내는 현재의 인간을 나타냅니다.

설국에 표현되고 있는 일본인들의 미(美)의 개념을 살펴보면 어딘가 현실을 벗어나 있는 고고한 청순미를 지향하질 않나 생각해 봅니다. 책 23페이지에는 "여자의 인상은 이상하리만큼 청결했다... 초여름의 산을 보고 온 자신의 시각 탓인가 생각할 정도였다."

최근에 유튜브에는 현재 엄청난 사람들이 일본여인들과 결혼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V-log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인들이 한인들을 좋아하는 부분은 순수함과 청순미인듯 합니다. 그러나 이 열대지방 사람들은 미의 기준에 중요한 부분은 화려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강의하는 대학교의 학장단 모임에서 부총장께서(63세) 탤런트 이민호가 오는 5월 11일에 제대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자리에 참석한 교수진들이 대부분 그 사실을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화려한 톱스타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 참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깊이보다는 넓이, 단순함보다 화려함을 선호하는 열대의 문화에 잠시 이질감을 느끼며, 잊고 지냈던... 설국의 미, 아름다움을 대하던 나의 마음가짐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