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살고보니] 필리핀 민중가수 프레디 아길라

필리핀 민중가수 프레디 아길라

세부에 살고보니 필리핀 사람들의 국민가수로 마음속에 남아있는 사람중 하나가 프레디 아길라(53년생)입니다.

프레디 아길라가 1978년에 부른 ‘아낙(Anak)’이 세계 56개국에서 27개의 다른 언어로 번안돼 수백만 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되는 아시아 최고의 가수였습니다. 또한 1980년 빌보디 2위까지 올랐고 2006년에는 필리핀 역대 최다판매 앨범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17살에 처음 기타를 잡고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나이 20세에는 처음으로 자신의 공식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그의 노래‘아낙(Anak)’은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프리디 아길라는 이 노래를 통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담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직접 만든 노래입니다. '아들아 네가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는 꿈이 이루어지는 걸 보았지. 그런데 무엇이 너를 변하게 했는지 우릴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아들아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네가 가야하는 곳이 어디든지 우린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단다.'

프레디 아길라는 De Guzman Institute of Technology대학에서 전기과를 다니다 음악에 미쳐 학교를 중단했는데 나중에 음악가가 되어 여기저기서 노래를 하다가 불현듯 18살에 자기가 음악을 위해 집도 나오고 대학교도 그만둔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하며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곡이 이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로 1978년 필리핀의 한 가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단숨에 아시아의 스타가수가 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프레디 아길라의 부친은 아들이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하는 것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고 그럽니다. 또 1979년에는 제2회 서울 국제가요제에 참석을 했었고 그의 노래는 많은 한국가수들이 번안해서 불렀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한인들은 비슷하게 다 알고있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필리핀 사람들에게 ‘프레디 아길라’라는 가수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의식있는 가수입니다. 그는 평생 영어노래는 부르질 않았고 모든 곡은 모국어 따갈로그입니다. 그는 필리핀의 민주화를 위해 마르코스 독재에 항거하던 시위의 한가운데서 그는 늘 노래로 저항에 나섰습니다. 그의 많은 노래들은 필리핀에서 방송이 금지되다 1986년 마르코스가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 금지가 풀렸습니다. 특히 그가 부른 바얀코(Bayan Ko, 나의 조국)는 저항의 거리에서 필리핀 민중들이 사랑했던 노래입니다. 한국으로는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같은 서정적이면서도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곡입니다. 2007년 KBS는 프레디 아길라의 근황을 취재해 보도했었습니다. 당시 프레디 아길라는 여전히 빈민가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의 주제는 서민들 이야기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노래로, 그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에서도 보도가 되었듯이 2013년에 있었던 나이 60에 어린 16세의 소녀와의 모슬렘식의 결혼식은 국가전체를 떠들석했고 엄청난 비난을 가져왔습니다.

최근에는 대통령 집권당 PDP-Laban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레디 아길라는 필리핀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한 가수로 노래들이 대부분 서정적입니다. 필리핀 노래들이 전체적으로 밝고 활기찬 곡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의 노래는 필리피노들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들 마음에 필리핀 노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은 바로 ‘아낙’이라는 곡인데 필리핀 사람들은 오히려 "Bayan Ko" (나의 조국)이라는 곡입니다. 필리피노의 마음 세계를 이해하려면 이 두곡을 잘 들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우리들의 18번 노래는 어떤 곡일까요? 물론 연령대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필리핀 86세대의 영웅 프레디 아길라를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