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살고보니] 중국과 함께

[세부에 살고보니] 중국과 함께

세부에 오래 살고 보니 어쩔 수 없이 한인들은 수많은 중국인 화교를 만나게 됩니다.

왜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의 주인이 대다수는 중국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향으로 저도 작년부터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Speed Talk라는 현지인 어학원에서 중국 화교에게 만다린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분을 통해서 중국어와 중국문화 또한 세부에 살고 있는 화교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물론 세부대(UC)를 설립한 ‘어거스트 고’도 중국인이기에 그리 중국 사람들이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목표는 내년정도에 중국어를 세부대학에서 가르치는 일과 중국본토에 가서 강의를 하는 일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최근 한국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이슈화 되고 있는 부분이 중국에 대한 인적유입 차단에 대한 논쟁입니다. 정부측 입장으로는 중국인에 의한 바이러스 유입은 희박하고 대부분은 중국에 다녀온 한인들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되었기에 중국인에 대한 입국제한을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현재 대략 1600여명선이 전염이 되었고 어제(2월 26일 기준) 하루 확진자수만 334명이 나오다 보니 나라가 혼잡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동안 우리 한반도는 6. 25 이후 중국은 중공이었고 공산당이었기에 색안경을 쓰고 바라다 볼 수 밖에 없었고 저 같은 선교사는 더군다나 종교를 탄압하기에 멀어져 있는 나라였기에 원래부터 오랫동안 중국과 이웃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던 나라였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실제 일제 전에는 우리는 거의 중국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왔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1895년 청일전쟁 전까지는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세부에 사는 중국 화교들은 대부분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자신들의 나라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청나라가 전쟁을 끝내는 조건으로 내세운 조건들은 1)조선은 청에 대하여 신하의 예(禮)를 행할 것. 2)조선은 명의 연호를 폐지하고 명과 교통을 끊고 명에서 받은 고명과 책인을 헌납할 것. 3)조선은 왕의 장자(長者)와 제2자 그리고 대신의 자녀를 인질로 보낼 것. 4)청이 명을 정벌할 때는 기일을 어기지 않고 원군을 파견할 것. 5)내외 여러 신하와 혼인하고 사호(私好)를 굳게 할 것. 6)성곽의 증축과 수리는 사전에 허락을 얻을 것. 7)황금 100냥, 백은 1,000냥을 비롯한 물품 20여 종을 세폐(歲幣)로 바칠 것. 8)성절·정삭·동지·경조 등 사신은 명 구례(舊例)를 따를 것. 9)가도(假島)를 공격할 때는 병선(兵船) 50척(隻)을 보낼 것. 10)포도(逋逃)를 숨기지 말 것. 11)일본과 하는 무역을 허락할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역사의 무게중심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또한 우리는 6. 25를 겪었고 그 후에는 또 무게중심이 미국으로 흐르면서 우리에게는 미국 전성시대로 넘어갔기에 중국을 잊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는 우리 역사보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더 친숙하고 수많은 사자성어와 한국어의 60~70%는 중국어에서 왔다고 합니다.

우리의 언어인 ‘너’도 중국어 ‘니’에서 저것도 중국말이고…18세기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는 베이징을 다녀 온 후, 중국을 배우자는 뜻으로 '북학의'라는 책을 썼습니다. "중국은 말과 글이 일치하며 집은 금색으로 채색되었다. 수레를 타고 다니며 어느 곳이든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니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고 칭송 했습니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 선생은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정부 들어서 다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예전처럼 우리가 속국은 아니고 당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좋은 이웃나라가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