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살고보니] 정태춘

[세부에 살고보니] 정태춘

세부에 오래 살고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세부섬 주민이 다 되어가며 편안하게 스며들어 들어갑니다. 단조로운 이곳 세부문화에 적응이 되어가면서 변화무쌍한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정태춘, 박은옥의 40주년 공연이 작년에 있었는데 저에게는 이 가수의 삶을 살펴보면 70년, 80년, 90년, 2000년, 2010년 한국의 격동의 시대와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결론적으로는 오늘 한국이 세계적인 BTS와 '기생충'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런 격동의 역사와 문화의 충격 속에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7년간 세부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아직도 사회변동과 큰 문화의 충돌은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하기에 세부섬 자체는 큰 변동없는 기존 사회와 문화의 틀을 유지하며 세부문화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정태춘은 1954년 생이며 1978년 제1집 '시안의 마을'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시인의 마을>

78년은 제가 고2였었는데 당시 이곡은 저에게 엄청 충격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당시 대중문화의 상황은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적 록음악의 탄생을 보여주었던 신중현 사단은 포크 가수들과 더불어 1975년에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활동을 정지당하게 되었고 대중음악의 암흑기 속에 1976년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 이후 최헌, 윤수일 등에 의한 팝화된 트로트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정태춘은 토속적 질감의 서정적인 노래로 구수한 고향의 향내를 풍기는 전원적 삶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는 정통 포크송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아름다운 노랫말과 가락은 억눌린 현실 세계 속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고향의 향수를 기억하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억압의 80년대 현실 속에서 서정적인 정태춘도 더 이상 서정성과 염세적이고 패배주의적인 노래를 부르질 않겠다고 선언하고 90년대부턴 7번째 정규앨범 '아, 대한민국...'은 무엇보다 이제 한국사회의 치부와 부조리를 드러내서 베는 날카로운 칼의 음악으로 바뀌었습니다.

93년에 발표한 그의 명 앨범 <92 장마, 종로에서> 타이틀곡은 사회성 짙은 모던 포크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거리의 열만이 식어버린 1992년 서울 거리를 바라보며 느끼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현재성으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순수한 서정 토속적인 시인가수가 사회정의를 외치는 투사로 변해가는 모습이 오늘의 한국사회와 문화의 변동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이런 역동성이 세계적인 BTS와 봉준호 감독을 만들어 내재된 한국문화의 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최근에 벌어진 코로나 바이러스19와의 전쟁도 전세계에서 제일 역동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은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되지만 내부적으로도 좌-우의 정치 그리고 문화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오늘의 치열한 한국의 모습은 저들에게는 감동이고 자랑스러워 합니다.

세부에 살면서 아직 이 섬에는 한국과 같은 치령한 갈등과 전투적인 비판 비평문화가 존재하질 않기에 긴장감과 문화변동이 거의 느리기만 합니다. 이런 평온한 문화가 세부의 강점이기도 하고 한국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는 힘일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의 위기는 또 기회가 되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민족의 저력을 보여줄 것입니다. 한국의 서정과 역동을 정태춘에서 찾아보며 한국의 변동의 힘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