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로 이어진 열린 대화와 소통의 장
'오늘, 첫 만남입니다.'
지난 12월 10일 법륜스님의 세부 강연회가 펼쳐지던 베네딕토 대학 강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건네준 안내서에 나온 첫 문구다. 하얀 종이 위에 새겨진 노란 나비 한 마리와 함께 길게 내려 쓴 '오늘, 첫 만남입니다.'란 한 문장이 정성담은 손글씨처럼 인쇄되어 있다.
강당 안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안내서의 맨 뒷면의 글귀에 눈이 간다.
"가족이라고, 오래된 친구라고 그를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상대의 진심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입견을 내려놓고, 가슴 설레며 처음 만나듯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다 보면 나의 모습도 새로워집니다."
법륜스님과 200여명과 세부 교민들이 함께한 2시간 30여 분 간의 만남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토회를 창설한 법륜스님은 지난 여름의 초입에서부터 뜻한 바가 있어, 세계 100개 도시를 돌며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부터 꽤 오랜시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의 법명과 활동은 단지 불교란 종교의 틀에 갇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100개 도시를 돌겠다던 강연은 연말까지 115개 도시로 늘어났고, 이곳 세부는 108번째 그의 행선지가 되었다.
108번째 도시. 108번뇌. 사실 연관은 없겠으나, 그래도 인연 잇기를 좋아하는 우리민족 정서상 이번 강연을 준비해온 관계자들은 세부가 108번째 강연지라는 사실에 더욱 반가워했다.
법륜스님의 강연은 즉문즉설이란 형식으로 진행된다. 즉문즉설, 말그대로 청중들이 즉석에서 삶의 고민,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면, 법륜스님은 즉석에서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하며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일반청중들은 질문자와 법륜스님의 질문과 대답들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나의 상황과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이어지는 질문과 답들 속에서 나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
그가 찾은 108번째 도시. 세부에 사는 우리들은 법륜스님에게 어떤 질문들을 물었을까?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삶이란... 인생의 선택과 선택에 대한 책임, 삶에서 만난다는 3번의 기회와 그 기회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타국에서 떨어져 지내는 자식을 어떻게 해야하나, 행복한 직업과 돈을 더 벌 직업사이의 갈등, 모기와 개미 같은 미물 살생에 대한 고민, 1년에 200일을 손님맞이로 보내는 삶의 고단함 등등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에 대한 법륜스님의 답과 다시 이어진 질문들을... 더 이상 적지 않겠다.
다만 어떤 질문자는 환한 대답으로 마이크를 내려놓았고, 또 어떤 이는 여러 번의 되물음을 시도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누군가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해와 공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사이 청중들은 함께 웃기도하고 함께 감탄하고 또 여러 번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강연을 주관한 정토회 측이 즉문즉설 강연에 대해 질문자 보호와 강연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가 왜곡 혹은 오보로 전해질 것을 우려해 녹취나 녹화 등을 금지했고, 인터뷰도 사양했으며 촬영 역시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까닭이다. 세부 뿐만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도 같은 형태를 유지했기에 강연 전 관련 뉴스자료를 찾아도 쉽게 보이지 않았던 듯 싶다.
솔직히 법륜스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왜 6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세계 100개 도시의 무료강연이란 프로젝트를 준비했는지. 그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그에게 어떤 형태의 고행은 아닌지. 108번째로 이어지는 강연을 통해 그가 찾은 것은 무엇인지...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눈에 힘을 주며 질문을 던진다쳐도, 법륜스님의 답은 이렇지 않을까, "거 알아서 뭐하게..."
저녁 9시 30분 까지 이어진 강연을 끝내고, 정토회 신도의 집에서 하룻밤을 쉰 후, 다음날 타이페이에서 109번째 강연을 갖는다는 법륜스님의 스케줄을 들으며, '그가 온 에너지를 강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뜻이겠거니 짐작만 가졌다.
각설하고, 세부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형식의 강연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반가움이 컸다. 관중들의 호응도 높았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1~2개월 강연이 홍보되긴 했지만, 200여 명의 교민들이 강연을 듣기위해 베네딕토 대학을 찾아 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교통체증이 극심한 평일 저녁 7시에 말이다. 게다가 세부 정토회에 '강연 진행 봉사'를 지원한 자원봉사자가 30여 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물론 법륜스님이란 지명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자발적 참여였다고 볼 수 있지만,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세부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문화와 공동체 그리고 교류에 대한 갈증과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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