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사목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완재 타대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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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이 땅의 행복을 기도 하겠습니다

요즘 필리핀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온통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세부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뉴스가 연일 신문지상에 장식되고, 시놀룩 축제까지 겹쳐 잔치집 같은 흥겨움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러한 시기, 한 명의 한국인 사제는 담담하고 평온하게 세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부 한인성당을 이끌어온 이완재 타대오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8년 1월 28일 세부 한인성당에 부임해 만 5년에 하루를 더한 시간을 이곳의 세부 사목생활을 마치고, 오는 1월 29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억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돌아갈 날을 헤아리며, 하루하루가 고역이었겠지만 저는 이곳 세부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때문에 5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듯이 사랑과 감사, 그리고 소중한 기억만이 가득합니다."
회자정리, 타대오 신부는 요즘 하루하루를 지난날을 정리하는 시간들로 채워가고 있다. 그렇게 돌아본 5년의 시간 속에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다고 전한다.
무섭게도 너르게 펼쳐진 푸른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유유자적 떠다니는 모습, 코코넛 나무와 함께 펼쳐진 백사장과 코발트색으로 빛나는 바다, 푸르름으로 가득한 산과 들의 풍경, 굵은 빗방울 사이를 삐죽 삐죽 헤치고 비치던 햇살 등등. 만약 오랜 시간 삶터로 여기고 살던 세부를 떠나는 순간에, 가장 기억에 남을 풍광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대오 신부께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풍광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세부에 아름다운 거 많지요. 그 아름다운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걸 꼽는다면 여기 아이들이죠.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많은 사람들 기리고 그 중에서도 맨발로 뛰어도 웃는 아이들의 얼굴이 가장 아름답죠. 울다가도 금세 웃고, 새초롬 하다가도 쉽게 배시시 웃는 아이들은 '희망'입니다. 이 땅의 희망."

현재 세부에서는 3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관광객이나 단기 연수 등으로 이 땅을 찾는 한국인들의 수까지 포함하면 4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타대오 신부는 종교를 떠나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현재보다 이곳은 낙후하고 어렵습니다.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이 많고 나라의 형편도 썩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곳의 문화를 우리 눈의 잣대로 '낮음'으로 간주해 버리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문화는 다를 뿐이지 높고 낮음으로 구분하고 평가할 것이 아니니까요. 다름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이곳의 문화를 존중하며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이곳의 문화를 수평의 눈으로 바라보면, 답답하고 나보다 낮아보이던 사람들도 같은 수평의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사는 땅의 사람들을 평등하게 친구로 바라볼 수 있다면 여기서의 삶이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이제 이곳을 떠나는 타대오 신부가 다시 사목활동을 위해 세부를 찾긴 어려울 터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있어 몸의 한부분이 되어버린 '세부'가 그의 호흡 속에서 기도 속에서 항상 존재할 것이다. 사제의 기도 속에서 염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굶지 않게, 배고프지 않을 행복이 이 땅에 함께 하기를 기도하고 싶습니다". 타대오 신부는 예의 잔잔한 미소를 띠웠다.

'떠나는 자리는 미련을 둘 것도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롭게 부르는 주님의 부르심이 가장 중요할 뿐입니다. 2천 년전 갈릴레아 호수를 거닐면서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것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그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응답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최근 세부 한인성당 주일 미사 강론 중 그가 전한 말이다. 아마도 이별을 준비하는 신부의 마음을 담담히 간결하게 표한한 것이 아닐까. 돌아서는 옷자락마저 담백하게 떠날 그이지만, 그의 기도 속에 세부는 항상 함께 자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