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씨의 소소한 일상] 내 사랑 '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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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본에 가면 칼 맞아요!

처음 로컬 시장이 있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던 제일 먼저 로컬 시장부터 찾아가던 나로서는 '놀랄' 말이었다. 심지어 인도에서도 시장에 간다고 하면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탈리아 볼로냐, 베니스, 피렌체, 영국의 런던, 옥스퍼드, 뉴버리, 킨터버리, 싱가포르의 로컬 시장, 홍콩의 스탠리마켓과 윙콕, 인도네시아, 일본 도쿄의 로컬 시장에 간다고 하면 살고 있는 분들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기 마련이었다.
나는 운 좋게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글 쓰는 친구들도 1년씩 전세금을 빼서 세계 여행을 하던 아이들이라 '여행에 관한 자부할 만한 고급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공통적으로 권했던 것이 다음 3가지 였다.
첫째, 어디를 가든 한 달 이상은 머물라.
둘째, 현지 시장에 가보라.
셋째, 현지 친구와 현지 식당에서 밥을 먹어라.

세부에 올 때에도 내가 가져왔던 것은 책, 그리고 아이들이 전부였다. 가지고 있던 여름옷 정도만 챙겨 들고 왔는데, 고작 라면 상자로 2박스 정도였다. 성인 한 명과 세 아이의 여름옷이.
때문에 나에게는 시장이 중요했다. 처음 세부에서 소개받았던 곳은 모두 몰이었다. 그다지 몰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몰에서 장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처음 거주지는 더구나 막탄이었는데, 그곳에는 아얄라처럼 정육이 신선한 몰이 없었다. 또 굳이 한국 음식을 고집할 마음이 없고 고기보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구입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곳이 몰이었다. 채소도 과일도 신선하지 않은 곳이 몰이었다. 차라리 나는 집앞의 사리사리 스토어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는 신선한 망고와 방금 낳은 계란을 살 수 있고 파와 양파도 비교적 신선했다. 양이 많지 않고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몰에서 파는 채소나 과일보다 훨 씬 더 신선하고 에누리도 가능했다.

그러다 칼을 맞을 수도 있다고 들었던 칼본에 갔다. 아이 셋을 우르르 데리고. 세부 정착을 도왔던 동서는 그 사실을 알고 기겁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세부에 온지 얼마도되지 않은 사람이 칼본에 간다고 하면, 칼본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칼본에 관해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동서 입장에서는 나와 조카들의 안위가 몹시 걱정이 되었겠다.
그런데 세상에! 칼본은 몇 주 동안이나 신선하지도 못한 채로 비싸기만 한 몰에서 장을 보던 나를 '환장'하게 만들었다. 신선한 양파가 당시에, 1킬로에 1000원, 방금 캐온 감자가 1킬로에 800원, 아보카도가 1킬로에 600원. 우리 식으로 하면 리어카와 같은 수레차, 카트를 하나 빌리면, 카트꾼을 보디가드처럼 쓸 수도 있고 아이들을 태울 수도 있다. 그 카트를 빌리는데 1시간이면 50페소, 나는 카트를 하나 빌려, 우리 아이 셋과 이이들 보던 아떼까지 태우고 칼본을 누비며, 1킬로에 15페소하는 양배추, 방금 밭에서 잘라와 밑동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1킬로에 50페소하는 양상추, 1킬로에 20페소하는 일본이오, 1킬로에 20페소하는 내 팔뚝만한 가지, 1킬로에 60페소하는 마늘, 이런 것들을 바리바리 사서 스타렉스 뒷자리를 가득 채워 막탄으로 돌아오고는 했었다.

그 먼곳까지 왜 가냐고 했지만, 그곳에는 신선한 채소가 있었고 사람 사는 냄새가 있었고 우리 아이들에게 경제 개념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삶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이 있었다. 엄마 손을 붙잡고 다니면서 시장에 갈 때마다 얻어 먹었던 덴뿌라와 같이, 칼본에는 길거리 음식들이 있는데, 특히 나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꼬치구이와 현지의 빵, 땅콩 등이다. 몰에 가서는 할 수 없는, 흥정과 덤도 있다.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칼본에 다니면서 단골집도 생겼다. 사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지도를 그릴 수 있다. BDO를 끼고 들어가면 입구에 수입 과일 리어카상이. 양쪽으로 야채와 청과물. 큰 도로를 끼고 쭉 가다가 꺽어지는 코너에는 1킬로에 30페소하는 숙주. 이 가격은 4년째 변함이 없다. 숙주 뒤쪽으로는 중국산 양파를 1킬로에 40페소에서 비쌀 때는 60페소까지. 그 길을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과일 청과상을 지나, 채소집이 있고 그 길 끝에는 중국 양파와 감자, 마늘을 자루로 파는 도매상이 있는데, 이곳에서 8칼로, 9킬로하는 자루째로 사면 칼본 시장 가격보다 무려 20%는 싸다.
칼본을 또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 길에 거의 모든 게 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꽃시장과 어시장까지. 참고로 에스엠 슈퍼마켓에서 1칼로에 700페소하는 새우가 칼본 파실어시장에 가면 400페소이고, 몰몰이라는 무척이나 맛이 좋은 생선은 에스엠 슈퍼마켓에서 1킬로에 300페소를 오가는데, 파실에서는 130페소와 150페소를 오간다.
그러니 칼본에서 채소와 과일, 생선과 꽃까지 사서 집에 들어올 때면, 개선장군의 금의환향이 안 부럽지 않겠는가?
스타렉스의 뒷자리를 온갖 풍성함으로 채워도 지금은 고작 2000페소, 3000페소 가벼워진다. 슈퍼마켓에서 찔끔 주워 담아 오는 것과는 아주 다른 비워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나는 공부에 대해 이러한 견해가 있다. 아이가 모든 종류의 시장을 경험하였을 때 생길 수 있는 호기심과 이해심이 '몰'에만 다니는 아이들에 비해 더 깊고 풍성하리라고, 그것은 수천만 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생생한 경험이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좀 더 풍부한 공부의 밑바탕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칼본! 더 없이 풍족한 곳. 칼칼하니 짭짤하니, 여유롭고 싶은 당신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