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를 떠나 서울 온지 1개월. 오자마자 받은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이제 당신도 나이가 들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래저래 좋아하는 치킨과 맥주를 더는 할 수 없게 되자, 우울한 심사가 되었다. 두문불출하고 아이들 세끼를 꼬박꼬박 차리며 '엄마' 생활에만 충실했다.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핑계로 미뤄놓았던 둘째 녀석 입학 준비를 돕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다른 일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서울에서는 아침은 세부에서와 사뭇 달랐다. 세부 시간으로 6시에 일어나지만, 한국에서는 7시다. 7시면 이미 남편은 출근한 뒤. 우리들은 게으르게 눈을 떴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으나 아떼가 없으니 마냥 여유를 부릴 수도 없다.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한차례 세탁기를 돌리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을 먹고 나면 빨래를 널고 공부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한국에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한국어 공부도 해야 한다. 나이에 맞춰 한글과 수학 문제집을 풀고 영어 문제집도 한국식 시험에 대비해 풀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어느덧 점심이다. 아이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 다시 점심 준비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난 아이들은 더 이상 공부할 생각이 없다. 아이들은 나에게 '외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인근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온다.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라서, 나들이 나갔다 오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아침나절에 해 놓은 빨래를 개어 정리를 하고 아이들에게 집안 청소를 맡긴 뒤에,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있으면 남편이 돌아온다. 저녁식사는 8시경이다. 그리고 9시에 저녁 식사를 마치면 청소를 위리릭 한 번 더 한 뒤, 이부자리를 깔고 잘 준비를 한다. 늦게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가진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빠와 장난을 치고 놀다가 12시가 다 되어 잠이 든다. 세부 시간으로 11시에야 잠이 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잠이 부족했고 짜증이 많아졌으며, 나는 아떼 놀이로 파김치가 되었다. 부탁 받은 청탁 원고는 들여다 볼 틈도 없었다. 세부로 돌아갈 날짜만 손꼽고 있을 때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휴가를 냈다."고 통보해 왔다. 주말까지 포함해 열흘이나 되는 휴가였다. 나는 둘째가 기껏 재미 붙인 공부를 놓게 되는 것도 걱정, 비용도 걱정, 아이들의 일과가 흐트러지는 것도 걱정. 반갑지 않았다.
남편은 "후회없이 놀자"며 아이들과 4년 동안 못해 본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혼자 노는 것을 잘하지 못하여 여행전문가인 동서를 불렀다. 동서는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캠핑할 곳을 수색했다. 남편은 바로 차를 렌트하고 가방을 꾸렸다.
첫 행선지는 동서의 절친 언니의 어머니댁. 홍천에 위치한 어머니댁 2층은 펜션처럼 꾸며져있었다. 서울집에서 3시간 거리의 그 집에 도착한 나와 아이들은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계획이라고는 없는 막무가내 일정이었는데, 홍천의 공기가 모든 걱정을 쓸어버렸다.
동서의 절친 미경 씨는, 나물을 잘 알았다. 우리는 미경 씨를 따라 집 주변에서 나물을 채취했다. 어려서 쑥이나 달래, 돈 나물 정도는 캐보았지만, 미경 씨처럼 취나물, 냉이, 미나리, 참나물, 망초나물까지. 새롭게 배우며 나물을 했다. 내 안의 일곱 살 소녀는 도르코 면도날을 들고 호미로 땅을 파며 나물들을 검정봉투 가득 채취했다.
둘째 날에는 미경 씨 가족과 함께 홍천 대명 비빌디 파크에서 물놀이를 했다. 아들들은 남편과 비치볼로 놀고 나는 여섯 살 딸과 수영을 했다. 이번에도 내 안의 예닐곱 소녀는 물장구치며 놀던 개구쟁이처럼 놀았다.
셋째 날에는 미경 씨가 살고 있는 양구로 이동했다. 우리는 미경 씨가 빌려준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추운 날씨를 걱정했는데, 미경 씨가 전기 매트를 가져다주며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그날 야영은 혹한기 훈련인 듯 추웠다. 아이들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다섯 식구가 서로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어려서 추위에 떨던 어떤 밤이 떠올랐다. 발가락이 시리면, 엄마 발에 가만히 대고는 했다. 나는 아이들의 발에 가만히 나의 발을 가져다 대며, 추위를 견뎠다.
다음날 장터가 섰다. 아이들은 장터에서 물건도 구경하고 떡볶이며 오뎅, 꽈배기, 떡 같은걸 사먹으며 신이 났다. 오랜만에 해산물도 있어 우리는 꼬막과 우럭을 사서 숯불 파티를 한번 더 하기로 했다. 숯불을 펴놓고 우리 가족, 동서네, 미경씨네 이렇게 세 가족이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다섯째 날에는 남편이 예약해 놓은 속초 대명콘도로 이동했다. 우리는 아바이 마을에서 갯배를 타고, 속초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놀았다. 꼬리잡기를 하고 레슬링을 했다. 세부에서 게를 잡던 것을 그리워하던 둘째는 너무나 재미있었는지 해변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속초 중앙시장에서 닭강정을 사와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에는 영랑호에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산행을 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 중 누구도 피곤한 기색 없이 산행을 마쳤다. 다음 날에는 대조영 촬영지를 둘러보고 순두부를 점심으로 먹고 미경 씨 가족과 헤어졌다. 그날은 어버이 날이었다. 남편은 어머니댁을 들리자며 그길로 무주로 향했다. 무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우리의 여행은 갈무리가 되었다.
참,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세부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접어두고 살았다. 열흘 동안 여행하며 나는 가족의 소중함, 인연의 소중함, 그리고 삶의 소중함을 느꼈다. 계획이 없어도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며 문제들을 풀어간다. 서로가 서로를 새롭게 알아갔다. 여행은 그런 해결의 과정이 가득한 경험이다.
나는 세부에 돌아가면 진정한 여행자의 자세로 돌아가, 아이들과 여행하며 돌아와야겠노라 다짐했다. 세부에 잠시 머물 든, 장기로 머물 든, 우리는 여행자이다.
시간의 여행자이고, 공간의 여행자이다. 어떤 테마를 가지고 여행 중이던, 여행을 할 때에는 옆에 있는 이들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구와 어떤 여행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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