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씨의 소소한 일상] 엄마를 느끼게 해주는...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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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점심을 먹는다. 밥을 나누는 일은,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는 일이라 늘 생각해왔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점심을 나누는 일은 나에게는 의미 깊은, 소중한 일이었다. 책을 읽는 일이나 일기를 쓰는 일, 문제집을 풀고 미래를 위해 뭔가를 배우는 시간처럼 절대적인 일이다. 밥은 몸을 키우고 정서를 키운다.

물론,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밥심'의 중요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왜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밥을 챙겨 먹이고 '밥 먹어라'를 입에 달고 사는지. 왜 사람들이 '밥 한번 먹자'를 인사로 하는지. 왜 가족을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라는 다른 표현으로 '식구'라고 하는지.
아이들을 낳고 친정엄마와 한집에서 살면서 나는 몹시 불편했다. 엄마는 아이들의 밥을 세끼 모두 최소 삼첩, 저녁은 오첩으로 차려야 하는 분인데, 나는 국만 끓여 먹이기도 하고 덮밥으로 간단하게 먹이고 끝내기도 했다.

내 밥을 열심히 챙겼던 친정엄마는, 혹시라도 내가 결혼하면 자신처럼 부엌데기가 될까 싶어 설거지와 청소, 빨래는 가르쳤지만 요리는 가르치지 않았다. 참고로 친정엄마는 식당을 운영해 집안을 일으켰을 만큼 손맛이 좋은 분이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경상도로 시집왔고 생계를 위해 한식, 중식, 양식을 두루 섭렵했던 것이다. 더구나 큰며느리라 부엌을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런데 내게는 어떤 소신으로 요리의 비법을 한 가지도 전수하지 않았다.

그러다 함께 살게 되었다. 아이들 밥을 챙기지 않는다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화를 내셨다. 나는 너를 그렇게 먹여서 키우지 않았는데, 너는 왜 시끼들을 비렁뱅이처럼 먹이느냐.

나는 항변했다. 엄마에게 요리를 배운 적도 없거니와 요리를 배웠다고 한들, 아이들을 황소처럼 먹여 키우는 것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위장만 키우며, 대식가로 키워 아이들이 온갖 질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대략 이런 논리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아랫목에 아버지의 밥을 묻어 놓으시고 몇 시간씩 사골을 끓여 가족을 먹였던 분들이시지 않나. 그 정성으로 키워낸 새끼가 제 자식에게 인스턴트나 사서 먹이고 데우기만 하면 되는 레토르트 제품을 요리라고 해서 내놓으니 어이가 없으셨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아이들 삼식을 그때 그때해서 먹이는 것은, 당시 내 사정으로는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나가야 하고 저녁에는 글을 써야 했고 젖먹이 셋째가 있는데, 어떻게 때마다 국을 끓이고 때마다 볶음에 무침에 생선구이를 굽는단 말인가.
그랬다. 절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셋째 돌만 한국에서 지내고 세부로 왔다. 나는 직장을 놓았고 번역 원고와 위인전을 쓰며 일의 양을 줄였다. 그리고 설거지와 청소, 빨래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 중에 하나가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좋은 식재료를 사기 위해, 칼본과 아얄라 메트로 슈퍼마켓 그리고 유기농 야채상을 찾고 탑스에도 오르내렸다. 요리책을 사고 인터넷을 찾아가며 아이들에게 매일 다른 음식을 해 주었다. 국은 날마다 끓였고 반찬도 오첩은 아니어도 삼첩반상은 되도록 애썼다.
식사를 아이들과 하면서부터, 나는 첫째 아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국에 절대 말아먹지 않는다는 사실과 생선반찬을 좋아한다는 것. 김치는 백김치를 선호하며 배추김치는 볶아주면 잘 먹는데 약간 달달한 것을 즐겨 먹는다는 것. 된장찌개를 먹을 때는 두부를 넣어주면 좋아하고 오니는 무치거나 볶은 것보다는 깎아서 고추장 찍어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깨우치게 됐다.
나는 얼마전 나보다 더한 분을 한분 만났다.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식사를 나누다 보니, 최근에 방학을 맞아 오전마다 도서관을 찾는 두 아이와 가까워졌다. 그 중에 한 아니는 꿈이 요리사였고 그 이야기는 지난 번에 이미 썼다. 다른 한 아이는 지원이라는 이름의 이국적 외모를 가진 소녀다. 이 소녀는 엄마의 도식락을 늘 자랑스럽게 펼쳐 놓고는 하는데, 식사할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에 대해 꼭 한 마디씩 했다. 가만 들어보니 자랑이었다. 선생님 보세요. 아이가 이렇게 서두를 열면,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의 도시락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동생들도 지원이 언니의 도시락을 보고 다양한 식재료에 놀라고는 한다.

이 아이는 동생들에게 자신의 반찬을 나눠주는데, 동생들이 모두 너무 잘 먹는다. 그때 나는 아이의 얼굴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지원이는 목요리 요리를 할 때에도 항상 '엄마가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다'거나 '도시락이 다시 보인다'거나 하며 한 마디씩을 했다. 나는 이 아이 마음속에 엄마를 그려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지원이의 어머니가 아이들 밥 먹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인 줄 알고있었다. 그녀는 가장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끼니를 챙기며,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에 힘을 쏟고 아이들이 어떻게 먹는지를 챙기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밥상머리 교육을 하는 분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았다. 지원이를 통해서, 아이들이 어떻게 엄마를 느끼는지를 보았다. 나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잘 모른다. 그것은 닥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도서관을 하고 보니,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먹고 놀며 공부하고 읽고 성장하는 속에서 내 아이들의 미래를 본다. 그리고 친정엄마와 내 남편을 길러준 시어머니께 감사하게 된다. 밥은 굶기지 않고 챙기셨던 그 숱한 시간의 사랑을 뼛속 깊이까지.

덕분에 나는 아침 도시락을 싸기 위해, 아침잠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