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씨의 소소한 일상] 부재중 전화와 아기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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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콩세알 도서관 앞에 내렸더니, 아기호랑이가 보디가드와 함께 산책 중이었다. 나는 보디가드에게 아기호랑이의 이름을 물었다. 그랬더니 주인이 킹이라고 대답했다. 뭐? 킹? 중국계 사업가라고 덧붙였다. 개도 고양이도 아니고 호랑이새끼를 집에서 키우는 중국계 사업가 킹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얼마 전 페북을 핫하게 달궜던 사자 세실을 사냥하던 치과의사 이야기가 겹쳐서 떠올랐다. 바로 어제 나는 세실의 새끼 중에 한 마리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이날 아침에 아기 호랑이를 산책시키는 중인 한 보디가드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호랑이 새끼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도 반응이 없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댔고 나도 두 장을 찍어 바로 페북에 업데이트했다. 어쩌면 킹이라는 중국계 사업가는 내가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발결하고 혹 소송을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좀 알리고 이야기도 하고 싶어졌다.

이날 아침 나는 핸드폰에 부재중 카톡이 수십통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였다. 전날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난 뒤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얼른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계속 통화중이다. 새벽 6시부터 7시까지, 이제 내가 애가 달아 부재중 카톡을 수없이 날렸다. 아무래도 연락이 되지 않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에게는 연락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외할머니께 큰일이라도 있었다면 엄마한테서만 카톡이 왔을리는 없으니. 그제야 여유를 찾은 나는 남동생게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한 뒤, 아이들 등교할 채비를 도왔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미안해. 이모한테 전화를 한다는게 너한테 걸었나 봐. 걱정 많이 했니?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걱정했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참 다행이다. 그런데 슬펐다. 타국에서 부재중 전화가 수십통 들어오면 나는 이제, 다른 일이 아니라 외할머니나 부모님에게 나쁜 일이나 생기지 않았나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그냥 급한 일이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혹시라도 그분들이 아프시거나 부고가 아닐까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그게 나이 마흔이구나.

이상한 것은 그리고 5분 안에 페이스북에 뜬 기사는 사막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조난을 당한 가족 이야기였다. 부부는 마지막 물을 자식에게 주어, 자식 목숨을 살리고 둘은 함께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나는 아침의 일들이 나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다.

'부모'

그리고 만난 아기 호랑이였다. 나는 아기 호랑이를 보는 내내 측은지심을 느꼈다.

네 부모는 어딨니? 형제들은 어딨니?
어쩌다 여기까지 왔니?
지낼만은 하니?

마음이 아팠다. 세부에 온 뒤로 나는 한국의 삶을 돌아볼 틈이 없이 살았다. 사실 뚝 떼어내고 살았다고 해야 맞겠다. 돌아갈 날이 6개월 남짓 남으니 하루하루가 새록새록한데, 특히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며 일 생각이며 친구 생각이 더 애틋하다.

이곳 세부에 두고 갈 인연들도 소중하지만, 이제 돌아갈 곳에 대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꼭 구운몽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꿈처럼 즐거운 날들, 혹은 혹독한 날들이 가고 돌아가면 이곳의 생활은 한낱 꿈 같을 터이다. 그럴까?

오늘 아침에 모든 것들이 '부모'와 맞닿아 있는 것은 내가 그럴 나이가 되어서일수도 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불혹이라더니, 더욱 혹한다. 더욱 마음이 여리고 섬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어쩌면 불혹이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불통의 전화에서 부모를 걱정하는 마음이 들고, 저 멀리 타국에서 있었던 애틋한 부모의 정에 눈물이 흐르고, 내 눈앞의 새끼호랑이의 목줄을 풀어주지 못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우치고 마흔 나이의 덕을 알게 되는 아침.
모든 일이 감사하고 모든 일이 은혜로운 아침이다.
내가 느낀 이 은혜와 감사를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 미루지 않고 이 글을 써서 마친다.

사진은 아침에 내가 만난 새끼호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