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씨의 소소한 일상] 빌려 줄 수 없는 노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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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친구가 왔다. 나보러 왔다고 한다. 아들 둘과 함께 영어 학원을 다니며 한 달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그동안에도 많은 친구들이 왔으니, 한 달 정도 손님이 우리 집에 머무르는 일이 대수롭지는 않다.

더구나 나에게는 막강한 '마릴린'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을 한식 상차림으로 차려낼 수 있고 늘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 주고 수건이 떨어질 날이 없이 빨래를 깔끔하게 해 주는 살림꾼이다. 가끔 내가 집을 비울 때는 아이들도 봐준다. 그녀가 있으니, 손님이 와도 내가 특별히 불편할 것은 없다. 다행히 방도 3개가 있어서, 우리가 하나 쓰고 마릴린이 하나 쓰고 친구가 하나 쓰면 됐다. 화장실도 3개니, 동시에 두 사람이 급하게 화장실을 쓰겠다고 하거나 목욕을 하겠다고 해도 불편할 일이 없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곧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라 냉장고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 데도 사지 않고 있다는 것과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3대뿐이라 방마다 선풍기를 하나만 쓸 수 있다는 것, 인터넷 신청을 하지 않아 무선 인터넷을 쓰며 나조차도 차가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닌다는 점 등이다. 이가 나간 그릇이 많은데, 이것 또한 곧 귀국할 생각으로 사지 않고 버티고 있다. 생각해보니, 친구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때 이후, 대학생이 되어 몇 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번, 아이 낳고 몇 번 만난 게 전부인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고 도서부라는 서클 생활을 함께 했지만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까지 인연이 된 것은 둘이 학교는 달랐지만 국문학을 전공(사실 나는 문예창작으로 졸업했다)했고 글을 썼다. 그 친구는 소설을 쓰고 나는 동화를 썼는데, 최근에 그 친구가 동화를 쓰면서 또 인연이 계속 이어졌다.

다시 말해 우리는 친구이고 제법 가깝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사이지만 서로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만큼은 가깝지 않아서, 첫 주를 함께 아는 동안 약간 긴장을 해야 했다.

바로 그때 일이 생겼다. 친구는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학회지를 만드는 모양이다. 휴가를 오면서 그 일을 가지고 왔는데 일을 하자면 인터넷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친구의 노트북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먹통이 됐고 일은 급했다. 다급해진 친구가 나에게 노트북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노트북을 내주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노트북을 내주고 난 뒤에 마음이 미친 듯이 힘든 것이다. 친구가 내 노트북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살짝 불편했던 마음이었지만, 친구의 사정이 급하니 안빌려줄 수가 없으니 내 손으로 내 노트북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안절부절못하고 일어섰다 앉았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랬느냐고? 나도 모르겠다. 노트북을 돌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다시 일어섰다 앉았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숨을 내쉬었다 마셨다. 나는 이 불안과 초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이웃집 언니에게 부탁하여 언니의 노트북을 빌려다 친구에게 가져다주고 내 노트북을 찾아왔다. 딱 10분 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그 불안과 초조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친구가 내게 물었다.

"노트북에 야동이라도 들었어? 왜 그래?"

정말 딱 그렇게 생각하기 좋은 상황이었따. 그러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내가 노트북 따위를 빌려주는 일로 공포적인 불안과 초조를 느꼈는가?
이웃집 언니가 말했다.

"그건 선생님 몸이랑 같은 거잖아요. 채율이 재원이 재율이보다더 더 많은 시간을 선생님이랑 함께 보내는데. 당연하지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나는 24시간 노트북과 밀착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도 지난 17년간 노트북은 나와 분리되어 있었던 적이 없다. 항상 읽는 책과 함게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고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조차도 나는 노트북과 입원했던 여자다. 그동안 썼던 나의 작품이 모조리 들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외장에도 담아놓았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데, 나는 노트북 자체를 분신처럼 여기며 지난 17년을 끌고 다녔던 것이다. 그것을 친구가 빌려달라고 했을 때, 나는 남편을 빌려주는 심정이 됐던 것이다.

이 일을 겪고 나니, 세상 사람들이 달리 보였따. 나는 사실 친구와 일주일을 보내며 친구의 어떤 성격들이 나와 달라 불편했다. 그런데 노트북 사건을 겪고 나니, 내 친구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나에게 얼마나 대수로운가를 이해하게 되었고 또 내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내 친구에게 얼마나 대수로운지를 알게 되었다. 놀라웠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불편했던 묵은 감정들이 모두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어떤 불편함 중에 대부분은 그들에게도 '노트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달라거나 남편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없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고 잘 살고 있다 믿었지만 사실은 나 또한 그들에게 "노트북'만큼 중요한 무엇인가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며 불편을 주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 제발 내가 눈치를 못챘다면 당신이 말해 달라. 당신의 노트북은 무엇인지? 앞으로는 나도 내 노트북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리라.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노트북 따위가 나의 분신이며 나 자신이라는 것을! 누가 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