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씨의 소소한 일상]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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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지금 편집을 맡아 일하고 있는 책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에 대한 답글은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가 된다. 나는 며칠 동안 이 문장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래, 나는 아직 8살이야.

기뻤다. 자신을 자각하는 일은 이런 기쁨이 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선풍기 앞에서 "아아아아"하고 숨이 찰 때까지 발성하기. 밥 먹을 때 아이들과 밥 잘 먹는 노래 부르기. 계단 올라가는 아이, 손잡은 채로 얼음하기. 애들한테만 편식하지 말라고 해 놓고 나만 몰래 티 안 나게 편식하기. 세 남매만 먼저 샤워하라고 깨워놓고 나만 5분 더 자기.

나한테는 8살의 정서가 있다. 그러니 겉만 어른이고 속은 아이다. 내가 아니라고 느끼는 이유를 나열해 보라고 하면 나는 10가지도 댈 수 없다. 몸은 어른의 몸을 하고 있다. 아이도 셋이나 낳았으니까. 누가 봐도 어른의 꼴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흰머리가 나고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배도 나왔고 엉덩이는 처졌으며 가슴도 조금 있으면 젖꼭지가 배꼽에 닿을 정도로 쳐질 것이다. 그러니 어른 중에서도 나이가 꽤 먹은 어른의 꼴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난 어른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도 많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마음이 애들하고 똑같고 저녁에 씻지 않고 그냥 자고 싶을 때도 있고 아무도 몰래 양치질을 빼먹은 적도 있고 남들 몰래 애들 사탕을 뺏어 먹은 적도 있다. 아이들이 숙제를 미루듯, 나는 종종 일을 미루고, 아이들이 변명하듯이 나도 둘러대기 선수다.

도대체 어딜 봐서 어른이라고 하겠는가?
다만 기술 혹은 실력, 능력 따위가 좋아져서, 요리를 제법 잘 하고 음식을 먹을 때 얌전히 먹고 수학 문제나 과학 문제를 조금 더 잘 풀고 책을 읽는 걸 좋아해서 잡다한 지식이 많아 가끔 똑똑해 보이고 심지어 책을 출간하고 만들어서 작가 혹은 편집자라는 이름으로 벌이를 하고 있지만 그건 일의 경험이 쌓여서 그런 것이지 내가 어른이라서가 아니다.

솔직히 아이들과 있다 보면, 놀라운 글재주가 있는 친구들을 본다. 어떤 표현은 내가 알고 이쓴 어떤 시인의 시구보다 더 아름답다. 어떤 아이들은 그림을 너무도 잘 그리는데, 그냥 막 그린 그림이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에릭 칼의 솜씨를 뺨치고 존 버닝햄의 능청스러움을 뛰어넘는다. 내가 아이들 속에 살고 싶은 이유기도 하다. 어쩜, 작가인 나보다 더 작가답고 편집자인 나보다도 더 날카로운 분석력과 판단력이 있다. 게다가 솔직하기까지.

여러 이유로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어른이 되면 쓸데없이 많은 책임을 지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해야 한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너무 일찍 어른처럼 책임을 지려고 하고 많은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한다. 나는 아이가 아이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어떤 어른에게는 아이가 되라고 주문하고 싶다.

어떤 어른들은 알맹이는 나처럼 아이인데, 어른인척 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선을 긋고 편을 나누고 사람을 차별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쁜 것들을 자신들의 자식 혹은 어린아이들에게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그게 무슨, 어른입니까?

그래서 묻는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어른이 되면 좋습니까?

그래서 나도 거울을 보고 있다. 아이들이 거울이다. 아이들이 내놓은 언어와 행동 속에서 나는 나를 보고 어른들의 잘못된 모습을 본다. 미성숙한 어른의 모습들이 아이들에게서 거침없이 나온다. 어쩌면 미처 생각했던 나의 부족한 모습들이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내가 요즘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발을 하나하나 닦아주는 이유다.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바닥을 두고 안달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갈 때, 실컷 발바닥이 까맣게 되도록 더러워진 다음에 닦아주는 편이 좋다. 내가 이이들의 발을 닦을 때, 아이들은 온전히 제 발을 내게 맡긴다. 누가 내게 발을 온전히 맡기겠는가?

그러니 나는 도서관에서 날마다 거울을 보며 세면을 하고 있는 8살짜리가 맞다. 어쩌면 내게도 9살의 날이, 10살의 날이 오겠지만. 이대로 멈추어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몸은 더 늙어가겠지만, 정신은 8살이고 싶다. 나의 의식은 8살이고 싶다.

당신은 어른이고 싶은가?
나는 8살이고 싶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솔직하게 거침없이 감각한 모든 것을 쏟아내는 나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발을 맡기고 불편하지 않은 8살이고 싶다.
나는 8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