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면 충분해요." 용준이 내게 한 말이다.
용준과 태연을 처음 만난 것은 8월 초였다. 교민연합뉴스로 인연을 맺은, 나에게 퍽 소중한 인연인 김인숙 씨를 통해서였다. 인숙 씨네 집에서 방학 동안 영어 공부를 하러 온 친구들이었다. 용준이는 중학교 2학년, 태연이는 초등학교 4학년. 그냥 도서관에 바람을 쐬러 온 것이었는데, 그 두 녀석을 보고 내가 끌리는 마음이 있어서 "너희들 선생님이랑 글 좀 쓸까?"했다.
당연히 두 사내녀석은 "싫은대요!"라고 답했다. 그런 답이 나올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기쁘게 인숙 씨를 졸랐다.
"나, 저 녀석들 마음에 들어요. 다음주부터 어떻게 아침마다 보내 주시죠."
인숙 씨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그래보겠노라 하였고 두 녀석 중에 용준은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번 해 볼게요." 이렇게 답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8월 둘째 주부터 일주일에 3번, 6번의 수업을 하기로 했다. 콩세알 도서관은 보통 아침에 한가하다.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대략 11시30분에 일군의 어린이 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아침 7시30분부터 도서관 개관 준비를 하고 글을 쓴다. 이 시간에 커피도 좀 마시고 하루 일과 정리도 하고 기도도 드린다. 고로, 이 아이들은 9시부터 11시30분가지 혹은 12시까지 90분에서 120분의 수업을 하기로 하고 첫날 도서관에 왔다. 대답을 않았던 태연이도 모습을 보였다. 알고 보니 영어 수업 시간을 줄여주기로 약속하고 게임시간을 30분 늘여주는 조건부로 참석한 것이었다. 그런 거래가 있을 줄 알았기 때문에, 그 거래가 통해 내 앞에 나타나준 것만으로 고마웠다.
우리는 첫날,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쓰기로 했다. 50가지를 쓰라고 했는데, 보통 이 미션을 주면 거부감 없이 쓰다가 10개쯤 쓴 뒤부터 뭘 써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쓰기도 전에 "하기 싫은 일 100가지를 쓰면 안돼요?"하고 물어왔다. 완전 솔직한 녀석들이다.
"좋아, 하기 싫은 일 100가지도 쓰자, 먼저 하고 싶은 일 50가지를 쓰고 나서."
재미있는 것은 연필도 잡기 싫어했던 태연이 군말 없이 앉아 50가지를 완성했고 40분만에. 하기 싫은 일 100가지 쓰면 안 되냐고 했던 용준이도 50가지를 38분만에 완성했다. 그리고 두 아이는 서로의 하고 싶은 일을 낭독하였고 우리는 30분쯤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서 나는 아이들의 꿈을 알아냈다.
"태연이는 로봇도 만들고 컴퓨터로 프로그래밍도 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구나. 그런데 컴퓨터도 하나 없어서 속상하지? 용준이는 돈을 많이 벌고 싶구나. 벌써부터 돈 관리를 제법 하고 있겠는걸. 그런데 그냥 움켜쥐고 있는 것 말고 돈 버는 법을 좀 배워야겠는데."
두 남자아이들의 표정이 얼마나 넋이 나간 표정이었는지. 이 지면을 통해 표현할 길이 없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뢰가 그때 그 아이들과 나 사이를 연결해 주었다.
"좋아! 그럼, 다음 수업엔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실제로 얻어낼 수 있는지 영화를 하나 보자."
그렇게 하여, 두 번째 수업에서 우리는 영화를 보았다. 시크릿이라는 영화였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며 나와 토론을 하였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감상문 대신에 미래 일기를 썼다. 이 즈음부터 아이들이 얼마나 진지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태연이는 아토피가 있었다. 첫날 심했던 아토피는 네 번째 수업을 할 때 많이 나아 있었다. 시크릿을 보면서 "네 몸을 아프게 하는 것도 너고, 낫게 하는 것도 너다. 너를 아프게 했던 미운 사람들을 잊어 버려라. 떼어 내 봐."라고 말했는데 그게 아이에게 크게 효과가 있었다. 며칠 만에 아토피 증상으로 붉었던 상처들이 놀라울 정도로 진정이 되었다. 인숙 씨도 태연이가 수업을 받은 뒤에 긍정적이 되었다고 하고 나 또한 두 아이가 나에게 보여주는 신뢰와 사랑에 벅찬 감동을 느끼며 수업을 이어갔다.
우리는 자서전을 스고, 사후 세계 체험을 하고 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부족한 자서전을 보완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게 다였다. 우리는 서로 말을 했다. 그리고 말에 관한 영상 자료를 두 개 쯤 보았고 뇌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달라졌다.
한국으로 보내는 날, 같이 밥을 먹었다. 그때 용준이 나에게 말했다.
"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면 충분해요. 선생님의 말 한 마디가 저랑 태연이 마음을 열었어요.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선생님 그렇게 해 주세요. 그냥 선생님이 사랑해 주시면 돼요. 고맙다. 힘들지? 할 수 있어. 선생님이 쓰신 책처럼요. 혹 안 열리는 친구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요. 그 부모님들한테도 말해 주세요. 따뜻한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요."
용준이의 말을 통해, 내가 얼마나 큰 힘을 얹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사실 용준과 태연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두 아이를 통해 내가 그동안 하고 있던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계기였다.
두 친구가 나에게 사랑을 퍼부어주면서, 나 또한 깨달았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경우는 흔치 않지만 내가 도서관에서 받고 있던 것이 바로 이 '사랑'이구나. 내가 사랑하고 있었던게 아니라 사랑받고 있었구나. 그 사랑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이로구나.
용준이 자신의 꿈은 수조를 버는 기업의 경영인이 되는 것이며, 그 경연인이 되면 내가 운영하는 콩세알 도서관에 후원을 하겠다고 했다. 일곱 개의 무지개 콩세알을 전세계에 짓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하란다. 그래야 자신이 찾아내서 후원하고 나에게 용돈도 준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페친을 맺었다. 나는 이 따뜻한 기운이 용준이를 통해, 태연이를 통해 번져 나갈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 두 아이가 모두 꿈을 이룰 것을 믿는다.
사랑한다, 용준아! 태연아! 너희가 내 기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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