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씨의 소소한 일상] 무지개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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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나는 세부에서 사귄 친구 K와 마볼로 요크 커피숍에서 브런치를 했다. 우리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버섯과 베이컨이 들어간 수란 요리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2시간여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하게 마흠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이야기, 세부에서의 생활 이야기,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때문인지, 가치관이 비슷한 때문인지 그간 살아온 삶의 궤적이 구체적인 모양과 색이 달라도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이야기 중에 나는 그녀에게 세부에서의 생활이 무지개와 같다고 말했다. 무지개. 옛날 요정 이야기 속에 무지개는, 그 끝에 금동전이 가득한 항아리가 묻혀 있다고 한다.

나에게 세부 생활이 딱 그렇다. 그것은 금동전이 가득한 항아리에 닿는 일이고, 내 삶을 송두리째 홍수로 밀어 넣은 뒤, 하나님이 보여주신 희망의 상징이며, 흰 빛인 줄로만 알았던 인생이 무지갯빛이라는 것을 알게 된 놀라운 경험이다.

처음 세부로 오던 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이 이 지면을 빌어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당시에 나는 하루에 3시간씩만 자며 일로 나를 학대했다. 그 이유는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세 아이를 기르며 일을 하고 아내로 잘 사는 게 힘들었다고 몇 번 이 지면을 통해 고백했지만, 사실은 그 뒤에 다른 것들이 있었다. 아주 다르지는 않지만 사실은 그렇다. 워킹홀릭이 된 것은,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이 부족할 것 같은 불안과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일을 해야만 빛나고 인정받는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고 산부인과에서 퇴원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거나 병원에 노트북을 들고 들어가 일에 빠져 있었던 것은, 일을 하지 않고는 나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우둔함 탓이었다. 세 아이를 낳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애초에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린이책 편집자로 잘 살기 위해, 그래야만 나의 존재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낳았다, 셋이나! 그리고 깨달았다. 낳았지만 엄마로서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꼬물꼬물한 아이들 셋을 저글링 하듯이 돌보는 일이 업무와 아내 노릇, 딸 노릇과 겹쳐지며 '뭐든 잘 해야 하는 나'의 한계를 훅 넘겨 버렸고 과부화로 터져버렸다. 날마다 남편과 싸웠다. 집이 아니라,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고 칭찬하는 사람들에게로 달아나지 못해 안달했다. 부끄럽게도 그랬다. 그게 세부로 오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때문에 나는 한국의 서울을 탈출해야만 했다. 이혼할 위기, 과로로 몸이 부서질 위기, 아이들을 망칠 위기에서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착하다고 믿고 고상하다고 여기며, 능력이 뛰어나다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을 오면서도 산더미 같은 일을 받아 왔고 남편에게 세부에서 도서관을 짓고 학교를 세울 것이라고 장담했다. 늘 능력만 믿고 자본도 없이 일을하여 어려움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렸던 것이다.

하지만 세부에 오면서, 나는 나라는 사람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제도 아니고 오늘도 아니고 늘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보며 살았던 내가, 갑자기 넘쳐나는 시간 속에 '오늘' 혹은 '지금이 순간'을 보게 되었다.
더 이상 넘치는 일정이 사라졌다. 출근할 곳이 없고 만나야 할 사람이 없고 심지어 요리하고 청소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서도 손을 놓게 됐다. 나를 바쁘다 바빠 토끼로 만들며, 하루라도 누구를 만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던 나의 삶에서 '미팅'이 사라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허전함이 나에게 밀려들었지만,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다. 완전히 나의 시간이 온 것이다. 처음에는 늘 일하고 애들 키우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불평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게을러졌다. 넘치는 시간 속에도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나는 멈춰 있었다. 푸른 하늘과 들을 보았고 황소개구리가 우는 소리에 잠이 들었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을 맞았다. 평생 공부하거나 일하며 쉬지 않았던 나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권태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슬슬 시작했고 수영을 하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편안하게 잠들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적은 돈을 받고 일을 시작했고 날마다 행복했다. 조금씩 일이 익숙해졌을 때 오랫동안 말로만 했던 도서관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선관에서 나는 마침내 무지개를 보았다.

그 무지개는 한국에서 내가 사람은 모두 흰 빛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사람은 무지개 빛으로 모두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돈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생각에서 돈이 얼마나 소중하며 제대로 돈을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으르게 해주었으니, 금단지를 만난 것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도서관을 운영하는 과정에 궂은 날만 탓할 줄 알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궂은비가 그치면 그뒤에 희망의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K에게 말했다. 세부에서 지낸 4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무지개를 보았다고. 이제 한국에 가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내 욕심으로 낳은 아이들에게, 엄마였던 적이 없었던 나는 이제야 엄마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거라고. 그러니 예전처럼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라는 헛된 믿음은 가지지 않을 것 같다고. 얼마가 되었던 나와 나의 세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다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나 자신이 을을 좋아하니, 미친 듯 일했던 과거와 달리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균형을 잃지 않을 때 나의 무지개는 진정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말만하고 쓰지 않았던 책 쓰는 일을, 이제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순간,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준 세부의 4년이라는 시간과 그간 만났던 모든 분들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혹 당신도 나와 같다면, 당신 또한 무지개를 볼 수 있길 기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