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 살고보니] 아들 (A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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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에 살고 보니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걱정되고 제일 관심사가 자식입니다. 부모로써 자기자식이 낯선 남의 나라에 와서 잘 적응을 하며 공부를 잘해서 본인의 원하는 꿈을 꾸며 성장해 나가게 해주는 것이 일반 부모의 바람일 것입니다. 이 섬에서 살고보니 교포 한인들의 이런 저런 부모와 자식 이야기들을 많이 보고 듣고 하면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많은 상처와 아픔 그리고 기쁨을 통해서 하나가 되어가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가 되어간다는 것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관광객들 중에서 필리핀을 좀 안다하시는 분은 세부에 처음와서 현지 연주자들에게 제일 먼저 연주를 신청하는 곡이 다름아닌 프레디아길라의 대표적인 곡 '아낙(Anak/아들)'입니다. 이곡은 1978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어 전세계 28개국에서 번안되어서 800만장 이상의 앨범이 팔렸고 1983년에는 미국 빌보드 차트 5위까지 기록합니다.

그러고 보면 자식문제에 있었는 국경이 없는가 봅니다. 부모도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자식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소망과 욕구를 가지고 있겠죠. 이런 부모의 바람과 자녀들의 꿈과 이상이 이렇게 잘 조화를 이루어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겠지요.


자식과의 관계

프레디아길라의 '아낙(아들)'이라는 노래를 소개합니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는 꿈이 이루어지는 걸 보았지. 우리의 꿈이 실현된 것이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지. 넌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이아였지. 네가 방긋 웃을 때마다 우린 기뻐했고 네가 울 때마다 우린 네 곁을 떠나지 않았단다... 우리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위해서는 신에 맹세코 너를 끝까지 돌봐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한다면 너를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계절이 여러번 바뀌고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갔구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거지. 이제 너도 어느새 다 자라버렸구니. 그런 너는 어느새 나쁜 길로 접어들고 말았구나. 아들아 넌 지금 망설이고 있구나. 무엇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말이야. 넌 너무도 외로운거야 네 옆엔 친구 하나 없는 거지. 아들아 넌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우리가 너의 외로움을 덜어 주련다. 네가 가야하는 곳이 어디든지 우리는 항상 문을 열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언제나 들어도 감동이고 이곡처럼 부모의 심정을 잘 표현한 곡은 없을 듯합니다. 이곡은 프레디아길라 본인 이야기로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던 부모의 바람을 저버리고 17세에 기타를 하나들고 가출하여 클럽을 전전하다 어느덧 갑자기 부모생각이 나서 만든 곡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기뻐하고 그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그러나 커서는 술과 마약으로 세상에 빠져 방황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표현한 곡입니다. 예전에 원주민들에게 한국 어머니들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즉시 원주민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우리 필리핀 사람들도 훨씬 자녀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라고 자신들의 자녀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아 여기도 똑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깨닫기도 했었습니다.

근 10년 전에 세부에서 만난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두분 다 당시 40대 중반이었고 물론 현재는 50대중반입니다. 한분은 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인들이 중매를 해주었는데 좋은 가정을 이루지는 못했었습니다. 문제는 이분이 특별한 직업이 없다는 것이고 하는 일이란 한달에 한번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하는 일입니다. "엄마 돈 다 떨어졌어" 그런데 그 부모는 한국에서 전문직에 있었던 분들입니다. 아버지는 유명한 모 신문사의 편집국장까지 했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40대 중반이 되도록 독립을 하지를 못하고 외국에서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자존심은 하늘을 치솟았고 서울의 유명한 곳들은 다 섭렵을 했기에 저 같은 지방 사람들이나 주변의 한인들을 촌스러운 존재로 치부하는 모습이 역력해 모두들 달가워 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자식이 2명 있으나 이혼을 해서 막탄섬에서 자식교육을 하며 살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분도 특별한 직없이 없어서 부모의 도움으로 살아가지만 아버지와 무척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 보였습니다. 이 분의 아버님은 서울 모대학 학장까지 하시고 독일에서 학위를 받으셨던 엘리트이시고 다른 자녀들은 모두 최고의 대학을 나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의 문제점은 아버지가 공부에 대한 실력이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자기 아들에게 지나치게 공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미국유학까지 보냈고 좋은 며느리까지 얻어주었지만 오히려 자식은 자신의 삶에 지나친 부모의 관심과 관여에 대한 부담과 반발로 인생을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그 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은 영특하고 머리가 좋아 할아버지가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재 이 두분은 부모들의 요청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두분 다 요즘 말하는 캥거루 가족들의 단면을 세부섬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다음은 제 자식이야기 입니다. 제 큰아들은 이곳 세부닥터스병원에서 22년 전에 태어나 며칠전 군대에서 제대하여 지금은 복학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선교사 자녀로 막탄섬에서 일반 원주민 학교에 다닐때까지만 해도 착하고 순진한 개구장이 아이였습니다. 이후 세부섬으로 옮겨오며 C.I.S와 BRIGHT를 다니며 처음으로 한국학생들을 접하기 시작했고 또한 현지 영향력있는 부모의 자녀들과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세속적인 아이로 변해 가더니 종국에는 패싸움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술, 담배는 기본이고 나중에는 경찰서 구치소까지 끌려가 현지인과 합의를 하여 70,000페소를 물고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프레디아길라의 '아낙(아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딱 맞춤한 듯한 제 이야기라 감동이됩니다. 제 아이를 키우면서 느낌 점은 이곳 세부섬에는 청소년이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가 약해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가는 곳은 거의가 식당, 노래방, 게임방, 당구장, 술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있는 것은 아이들이 모여서 매번 하는 이야기들은 늘 진지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가? 군대는 언제 갈 것인가?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던 아이가 군대를 가면서 또 그전에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변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한국에 가서 세상의 현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돈의 개념도 알기 시작했고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조건들을 배워가기 시작을 하더니 결국 군에 가서 수많은 욕을 들어보며 또한 많은 억울한 군대폭력을 당해가면서 겸손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대하면서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아나서려 하고 있습니다.


내 자식

결국 부와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내 자신과 다음 세대와의 연결고리로 나는 서서히 물러가고 자식들의 세계로 연결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러하기에 연결은 되었지만 내 자식은 또다른 자신의 고리를 이루어 나아가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좋은 부모는 그들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잘 해주는 것이 아닌지요? 관심과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결국 부모품을 떠나지 못하고 캥거루처럼 되면서 사이만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가 세부에서 수많은 방황을 하였지만 그 과정은 부모에게서 벗어나서 독립하려는 과정으로 해석됩니다. 이 아이가 제대 후 복학을 하지 않고 경찰시험을 본다고 전화가 왔을 때 전 속으로 '자식을 잘 키웠구나'라는 미소를 가득 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아들의 앞날은 변화무쌍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건 스스로의 결정을 따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는 뒤에서 박수와 격려로 응원하는 아버지가 되고자 합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