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살고보니] 이별...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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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에 오래 살고 보니 여러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중에 제일 큰 아픔은 이별일 것입니다. 얼마 전 대학교에서 수업 중 한 학생의 폭풍 같은 울음 속에 잠시 수업을 중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들려주기를 방금 남자친구에게 이별의 통보를 받았나 봅니다. 한국 사람이나 필리핀 사람에게나 이별은 너무나도 쓰라리고 아픈 상처와 슬픔을 주나 봅니다. 저도 이렇게 오랫동안 이 섬에 살고 있지만 헤어짐을 당한 학생의 슬픔이 이렇게 까지 크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처음 본 장면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다가가서 위로해주고 함께 해줄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보며 섬사람들에게 가장 큰 아픔은 오히려 죽음보다도 이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섬에 살면서 제일 힘든 부분이 친했던 사람들이 세부를 떠날 때입니다. 그래서 많은 손님들이 저를 찾아오지만 정을 안 주려고 무척 노력을 합니다. 왜냐면 정이 들어가는 순간 헤어질 때의 아픔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세부 섬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별을 준비해야 하며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요?

이별이란?

어제는 3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 하나가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하나 올렸습니다. 영어 그대로 옮겨보자면 "A Strong person doesn't take revenge when they are hurt, they let go the pain by smile & forget"(강한 사람은 상처를 당했을 때 복수를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웃음과 잊음으로 그 아픔을 떠나보낸다). 이 학생은 학업을 중단하고 출산하여 현재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학생의 아픔을 알기에 제가 이런 댓글을 보냈습니다. "The pain let you grow and make a strong... because only pain let you know real joy and true life"(그 아픔은 너를 성장시키고 강하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아픔만이 너에게 참 기쁨과 진정한 삶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보냈더니 그 즉시 그 학생이 이런 답글을 보내왔습니다. "Indeed sir"(사실입니다, 선생님).

제가 가르치는 관광학과와 HRM에는 예쁜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 학생들은 공부보다는 화장하고 노는 데 더 열심인 듯 합니다. 학생들의 세계를 알게 되니 학생들 중 상당수가 아이가 있고 아이가 생기면 학업을 중단하고 양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아빠가 없는 싱글맘입니다. 전형적인 필리핀 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학교에서 보게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자로써 그 감당해야 할 아픔은 너무나도 크다는 것입니다. 이 학생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물어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만 합니다. 여학생들은 그 상처의 영향으로 몸도 벌써부터 아줌마가 되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봅니다. "왜 필리핀에는 이렇게 싱글맘들이 많은 거니?" 제 개인적인 견해와 이해는 '필리핀은 천주교권이라 이혼을 허락하질 않기에 사람들이 결혼하는 걸 두려워하고 일단 살고 보는 게 아닌가?' 헌데 놀랍게도 학생들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원인은 '가난'이라는 것입니다. 여학생들이 가난하니까 남자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가난한 여학생들에게 출산까지 하면서 이별을 체험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픔이 클 것입니다. 그럼에도 필리핀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끈끈하고 카톨릭 사회라 기쁨으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호적으로는 자녀가 아니라 동생으로 되어있지만...

이별이란 정말 아픈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읽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사랑하는 일도 잘 헤어지는 일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질투에 빠지게 됩니다. 평정을 잃게 됩니다. 섹스피어는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여 먹이로 삼는 초록 눈의 괴물'이라고 말했습니다. 헬렌 피셔 교수(럿거스대/뉴저지 주립)는 '질투는 소유욕과 의심이 뒤엉킨 인간의 지독한 고뇌'라고 정의를 합니다. 질투심은 남녀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다 있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유독 심한 사람들은 사실상 자신감이 없고, 무능하거나 지나치게 상대에 의존하며 '관계는 곧 소유'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질투하게 되는 것은 결국은 '그를 잃을까봐 두려워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온전하게 그와의 깊은 관계가 형성되고 그와 영원히 있게 되다가 헤어져야 한다면 우주가 깨지는 아픔을 겪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쉽지 않습니다. 익숙해진 상태를 벗어나느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사실 멋진 이별이란 없습니다. 이별이 길어질수록 힘들어질 것입니다. '잘 사랑하기', '잘 이별하기',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우리들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중 하나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라고 말을 하는데 그 기간은 적어도 1년은 지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1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페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다음 단계를 밟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는 보통 자기 주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상실의 다섯 단계라고 합니다. 이별이란 그 존재가 내게서 사라진 것이므로 죽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됩니다. 누군가를 상실하고 나면 이러한 감정들이 순차적으로 찾아오는데 어떤 때는 수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분노와 우울이 찾아와 엉망이 되지만 마지막으로 좌절이 아니라 수용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려면 그 이별의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진주로 키워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별훈련

헤어질 땐 다음을 꼭 기억하십시요.

1)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 '이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며, '이별'을 먼저 말한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2) 내가 이별을 겪을 동안 나를 지원해 줄 친구들에게 의지한다.
3) 이별할 때는 의연하라. 소란스럽더라도 꼭 이별해야 한다면 번복하지 말라.
4) 공공장소에서 이별하라. 그리고 식사를 한다면 식사 전에 선불하여, 언제든지 일어나 나갈 수 있도록 한다.
5) 한번 더 기회를 주지 말고, 관계를 정리하고 나면 그 사람을 더 만나지 말라.
6) 이별 후에는 얼마간 많이 아플 것임을 인정하라.
7)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더라도 인생은 끝나지 않았음을 잊지 말라.
8) 자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라.

그러기에 저희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공부하면서 친구들 만나면서 치유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이별의 상처는 남아있지만...

"가장 훌륭한 포도주가 가장 독한 식초로 바뀔 수 있듯이 깊은 사랑은 할수록 가장 지독한 혐오로 바뀔 수 있다" - 존 릴리(시인)

곧 사랑도 너무 깊으면 오히려 이별의 순간에는 더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부 섬에서 눈물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가능하면 약한 이웃들을 돕는 삶을 살아간다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세부에서의 삶이 밝고 아름다운 따뜻한 섬 생활이 될 것입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