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에서 살고보니] Wacky(와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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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에 오래 살고 보니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환되어가는 시대의 변천사를 이곳 남의 땅에서 다 체험하게 되며 일단 세부섬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적응하는 일도 하나의 과제였지만 새로운 21세기의 삶을 이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주제였습니다. 얼마 전 세부대학교에서 수업 후 학생들과 그룹 셀카를 찍다가 학생들이 한결같이 "Wacky"(와키: 지매난, 괴짜, 엽기)라고 외치며 온갖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문제는 찍은 후에 사진을 확인하는 중에 학생들이 무척 섭섭해 합니다. 왜냐면 그중에 엽기적인 모습을 표현하지 않고 가장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한 것은 저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우리 학생들은 21세기 밀레니엄 세대지만 저는 아직 20세기 베이비부머 세대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구식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 도대체 이 Wacky세대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밀레니엄 세대

Wacky(와키)라는 단어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실 듯 합니다. 저도 학생들과 있다보니 알게 된 단어입니다. 한국말로 '엽기'라고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페북에 사진을 올리면 수십 장의 사진을 올립니다. 같은 장소와 같은 위치인데 변하는 것은 표정뿐입니다. 문제는 온갖 엽기적인 모습을 찍어내는 것입니다. 요즘 세대는 그것을 멋으로 이해하고 있나 봅니다. 물론 한국은 그렇게 까지는 다양하게 표현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최근에서야 처음으로 셀카를 찍기 시작 했습니다. 왜냐면 제 세대는 자기 표현력이 무척 약한 시대를 살아왔었기 때문입니다.

'엽기'라는 한자단어를 분석해 보면 獵奇(사냥할 엽, 기이할 기)인데 말 그대로 본래의 뜻은 '비정상적이거나 기이한 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님'이라는 뜻입니다. 저희 세대는 그야말로 모더니즘 세대라 어떻게 되었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착하고 모범생이 되는 게 최고의 가치관으로 알고 살아왔던 터라, 엽기적인 모습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한국에서 손님 오면 사진을 자주 찍어주기도 하곤 합니다.

한번은 현직교사이고 목회자 집안 따님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주었는데 나중에 확인하는 작업 중에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왜냐면 사진 중 상당수 혀를 내밀고 찍었습니다. 저는 망측해서 '아 실수의 사진들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하고 다 지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분은 일부러 그런 포즈를 취한 것이라 했습니다. 사진은 예쁘고 젊잖게 나오는게 좋은 사진이라고 믿는 세대에서만 살아왔던 저와 재미난 표정을 즐기는 와키 세대의 격차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시대는 바야흐로 모범생의 모더니즘 시대는 흘러가고, 자신만의 개성과 엽기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밀레니엄 시대입니다. 이 세대의 특징들은 1) 긍정적인 삶의 방식, 2) 디지털 환경, 3) 간소한 삶을 선호,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에 충실, 4) 다른 민족과의 경계가 약합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무척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이제 자신을 표현 하고픈 설카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꼭10대들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무대에서 만난 각국 정상들도 장소가 어디든 자신들을 표현하고자 셀카를 찍는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2013년 12월 10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만델라(Nelson Mandela) 추도식에서 옆자리의 헬레토르닝-슈미트(HelleThorning Schmidt) 덴마크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영국 총리와 활짝 웃으며 만델라 장례식장에서 셀카를 찍었습니다. 오바마는 15분에 걸친 격정적 추모 연설로 장내를 감동시켰지만 자리로 돌아온 뒤 웃으며 정상들과 셀카를 찍은 것이지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극한의 셀카' 같은 또 다른 엽기사진도 대단한 인기입니다. 절벽 끝이나 고층 빌딩에 아슬아슬 매달린 사진은 이제는 평범한 수준이며 전투기 조종석에서 또는 스카이다이빙 도중의 셀카에 이어 2013년 12월 24일에는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 마이크 홉킨스(Mike Hopkins)가 국제 우주정거장을 수리하는 우주유영 도중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색다른 엽기 셀카를 찍으려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었습니다. 2014년에 들어서만도 8월에는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인 포르투갈 호카 곶에서 여행 중이던 폴란드인 부부가 셀카를 찍으려다 다섯 살과 여섯 살인 두 아이를 남기고 추락해 숨졌습니다. 7월에는 멕시코시의 오스카르아길라르(21세)가 장전된 줄도 모르고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셀카를 찍다 사망했습니다.

셀카는 자기탈출의 표현

셀카를 찍는 모습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행위이기에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나르시시즘의 관점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찍어대는 셀카가 상징하는 나르시시즘은 건강한 관계의 신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는 과도한 나르시시즘은 자신감이 강한 사람보다는 나약한 자아와 자존감으로 인해 외부적 확신 요소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진 트웬지(Jean Twenge) 심리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방대한 규모로 미국 젊은 세대의 나르시시즘 현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트웬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최근 젊은 세대가 자신을 중요하게 간주하는 나르시시즘 성향이 크게 높아졌지만 이것이 행복감과 만족감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젊은 세대의 자존감은 크게 높아졌지만 이와 더불어 침울함, 불안, 걱정, 우울, 소외감도 함께 높아졌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그토록 셀카와 엽기사진을 찍는 이유는 자기만족보다는 오히려 관계형성에 더 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내 얼굴이 더 예쁘게 나오도록 찍고 또 찍는 셀카지만 본질적으로 그 목적은 자기만족보다는 관계 형성에 있는 것입니다. 나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하는 욕망이 셀카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셀카라는 것은 '나'를 찍는 자아도취적 행위이지만 동시에 '관계'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셀카중에서 와키(엽기) 사진은 현대인들에게 내재된 침울, 불안, 걱정, 우울, 소외감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 탈출의 한 표현이기도 하고 또한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특징인 해체주의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저와 페북 친구인 한 자매는 현재 강사인데 날마다 페북에 사진을 올립니다. 헌데 한번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아시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매일 훈련으로 웃는 셀카를 찍고 있습니다. 그저 너무 사실적이라 업로드 하지 않을 뿐. 햇빛 좋은 날 차 안에서 찍은 셀카가 사실적이지 않아 이렇게 공주병 마냥 여러장 업로드 합니다. 모두 좋은 한주 되셔요."

오늘도 인터넷에는 하루 평균 약 3억 5000만장의 셀카가 올라온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그만큼 현대인들은 고독하고 또한 젊은이들은 어느 때보다 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세부에서 이리저리 많은 고민과 아픔 속에서 살고 있는 교민 여러분 21세기 젊인이들처럼 그런 아픔을 엽기적인 셀카를 매일같이 찍어보면서 나의 또 다른 모습과 과거의 전형적이었던 나의 모습에서 다양한 나의 모습을 표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필자는 23년 전 세부에 정착하여 현재 한사랑 교회 목사, 코헨대학교 세부분교 학장에 재임중이며 UC대학 HRM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