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배움의 여행 - "왜 우리집 담장 앞이 뒷산보다 더

대안학교 '간디학교'를 설립한 양명학 필리핀 국제간디학교(두마게티 소재) 교장이 전하는 '배움'을 배우는 문답식 에세이다.
학생과 철학자의 대화를 통해, 배움 그리고 배우는 즐거움, 배워야하는 까닭 등을 질의와 문답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담담한 질문과 답문을 오가는 사이 단지 학생의 범주를 넘어서 삶을 마주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배움에 대한 인문학 개론을 만난다.


인생은 배움의 여행.jpg소년 : 선생님,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 아직도 제 마음에 석연치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그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철학자 : 저런. 속이 시원해지게 한 번 이야기해 보려므나.

소년 : 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어요. 겨울이면 무척 춥잖아요. 그런데 햇빛이 비칠 때 우리 집 담장 앞에 앉아 있으면 좀 따뜻해요. 그런데 뒷산에 올라가면 집 앞보다는 훨씬 더 춥거든요. 그래서 태양을 바라보며 생각하곤 했어요.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야.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있어. 우리 집보다 뒷산이 더 높은 곳에 있잖아. 그러니까 거리로 따지자면 뒷산이 우리 집보다는 태양에 더 가까운 게 확실해. 그런데 말이야 왜 태양으로부터 더 멀리 있는 우리 집 앞이 태양에 더 가까이 있는 뒷산보다 훨씬 더 따뜻한 걸가?' 제 머리 속에 이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맴돌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죠. 참 답답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어느날 수업시간에 용기를 내어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께 질문을 했지요.
'선생님, 태양은 우리 집보다는 뒷산에서 더 가까운데요. 그런데 왜 우리 집 담장 앞이 뒷산보다 더 따뜻한가요?'

철학자 : 그래, 선생님은 뭐라 대답하셨지?

소년 : 전 사실 선생님의 대답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마치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선생님은 아무 대답 없이 계속 하시던 수업을 하셨어요. 전 그 순간 무척이나 당황했지요. '선생님이 내 말을 못 들으신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것일까?' 수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그렇게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났어요. 전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평소와는 달리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고 싶지도 않았어요. 한참이나 집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았지요. 뭉게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상상 속에 빠져 들었는데, 그러니 잠시 후에 다시 기분이 좀 나아졌지요. 다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골똘히 생각해보았어요. '왜 선생님은 내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어요.

철학자 : 같은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도 해 본 적이 있니?

소년 : 아뇨. 전 그 일에 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어요. 제가 용기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님 그 일에 관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 이후로 전 학교에서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철학자 : 저런, 초등학교 1학년 때 벌써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니, 그건 정말 큰 일이구나. 질문이 없다는 건 말이야,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뜻이거든. 그럼 넌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살아왔단 말이냐?

소년 : 물론 그런 건 아니예요. 엄마에게는 편하게 질문을 하죠. 엄마는 제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거든요.

철학자 : 아 그렇구나, 그건 참 다행이다.

소년 : 전 나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편이죠. 하지만 학교에서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있기란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철학자 : 그래 맞아, 그건 정말 힘든 일이야. 한 번 생각을 해봐라. 네 친구가 네 이야긴 하나도 듣지 않고 자기만 일방적으로 4시간 이상 이야길 해댄다면, 와! 그건 정말 아무도 참을 수 없을 거야.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난다니, 정말.

소년 : 학교에 가면 저는 늘 상상 속에 빠지곤 했지요. 동화책에 나오는 친구들을 차례대로 불러내거나 상상의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그들과 함께 신나는 이야기를 펼쳐가곤 했죠. 가끔 선생님이 수업 외의 다른 일을 하고 계실 때,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장난치는 일은 참 재미있었쬬.

철학자 : 그건 어린 시절 교회 가서 지루한 설교 드는 것하고 비슷하구나. 난 늘 종이에다가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는데, 물론 설교를 받아적었다는 것은 아니고 종이에다가 여러 가지 상상을 끄적거리는 거지. 그럼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언가 열심히 설교를 듣는 것 같아 보이고 난 내 나름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말이야.

소년 : 초등 시절 내내 제 생활기록부에는 늘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심성이 착하나 매우 주의산만함'
전 그 당시에는 '주의산만'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하지만 엄마가 그것에 관해 아무 말씀도 없으신 걸 보면서 별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철학자 : 그럼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니?

소년 : 그럼요. '주의산만'이란 말은 제 시선이 선생님에게 붙어있지 않고 앞으로 뒤로 여기 저기 마구 돌아다닌다는 거잖아요, 하하하. 쉽게 말해서, 제가 선생님 말을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전 상상을 하거나 친구와 장난치면서도 선생님 이야기는 대체로 듣고 있었떤 것 같아요.

철학자 : 그래? 그것 참 신통하구나. 그것도 능력이지, 안 듣는 것 같으면서도 듣는 것은. 내 친구 중에는 자면서도 듣는 친구가 있었지. 늘 수업시간에 자는데도 성적은 그럭저럭 나오는게 참 신기했거든. 그래서 물었더니 자다가 가끔 깨어나면 칠판을 한번 씩 쳐다보는데, 그 때 본 것이 늘 시험에 나온다나, 뭐 그러더라구. 어쨌거나 질문 한 번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수업에서 주의산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겠지, 특히 초등학교 시절엔 말이야. 하지만 네가 학교에서 질문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그건 너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많은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일이기도 하지. 왜냐하면 모든 배움은 질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란다.


■ 필리핀 간디국제학교 http://gandip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