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배움의 여행 - "원자를 보신 적이 있나요?"

대안학교 '간디학교'를 설립한 양명학 필리핀 국제간디학교(두마게티 소재) 교장이 전하는 '배움'을 배우는 문답식 에세이다.
학생과 철학자의 대화를 통해, 배움 그리고 배우는 즐거움, 배워야하는 까닭 등을 질의와 문답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담담한 질문과 답문을 오가는 사이 단지 학생의 범주를 넘어서 삶을 마주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배움에 대한 인문학 개론을 만난다.


원자를 보신 적이 있나요.jpg소년 : 선생님, 전 사회나 국어 같은 과목은 따라가겠는데 과학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전 사실상 이미 오래 전에 과학수업에 모든 흥미를 잃고 말았지요.

철학자 : 그것 참. 왜 과학에 흥미를 잃게 되었지?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렴.

소년 : 그럴게요. 언젠가 화학수업 시간이었어요. 화학 선생님은 칠판에 원자의 구조를 그림으로 그리셨지요. 그리고는 이 세상의 모든 물질들은 결국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의 모양은 이렇게 생겼다라고 설명해주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덧붙여서 원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다고도요. 저는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원자는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다는데, 원자가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는걸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전 너무나도 궁금해서 결국 선생님께 질문했어요. '선생님, 원자의 모양을 보신 적이 있나요? 저련 모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시죠?'
그 분은 성품이 온화하신 분이신데, 전혀 화를 내지 않으시고 이렇게 대답해 주셨어요. '물론 나도 본 적은 없단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모든 책에 그렇게 적혀 있는 걸 나는 그저 전달하는 거란다.'

철학자 : 그 선생님은 참 솔직한 분이구나. 너희들이 배우는 교과서나 참고서에는 원자의 모양이 그런 모양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에 대한 근거를 다루지는 않을 거야. 그럼 워낙 어려운 내용이 될 테니까.

소년 : 아 그런가요? 하지만 전 그 선생님의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어요. 원자를 본 적이 없는데 원자의 모양을 배우고 또 외워야 하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 화학을 포기하게 되었죠. 다른 과학과목도 사정은 비슷했어요, 생물은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요. 결국 과학 과목들을 모두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과학의 두뇌가 부족해서 그런가요?

철학자 : 글쎄다. 네 두뇌가 과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두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구나. 물론 사람들 중에는 수학이나 과학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면에 수학이나 과학은 잘 하는데 음악이나 미술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니 네가 수학 과학 지능이 매우 낮게 태어 났다면, 노력을 한다해도 과학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소년 : 전 아마도 그렇게 태어났나 봐요.

철학자 :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단다. 어쩌면 과학공부 방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어. 만일 과학공부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네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직접 관찰을 하거나 실험을 하면서 그 ㅎㄴ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높여 간다면 아마 넌 과학에 흥미를 가졌을 수도 있어.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위에서 아래로 던졌을 때 가속도가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고 싶다면, 다른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충격을 실험해 보면 되는 것이지, 쉽게 말해서 네가 직접 50cm, 1m, 1.5m, 2m, 2.5m의 높이에서 뛰어내려보면 그 충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명 느낄 수 있다는 거지. 물론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 해 본 적이 있는데,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높은 데서 뛰어내려서는 안된단다. 대부분 과학 수업이 지루하고 아이들이 과학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과학수업방법이 잘못된 경우가 더 많은 거지. 제대로 된 과학수업이라면 과학적 사고능력이 뛰어난 사람 뿐 아니라 너나 나같이 보통 사람들도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거야.

소년 : 과학수업이 재미있을 수도 있단 말인가요?

철학자 : 과학이란 참 흥미로운 분야란다. 자연과 우주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해 주는 학문이지. 그리고 과학은 우리 인간의 일상적 삶이 우주의 신비와 바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단다. 그런 의미엣 ㅓ과학은 위대한 학문임에 틀림이 없어. 우주의 신비한 비밀은 광대한 우주와 별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만나느 하나의 꽃, 나무, 벌레, 돌, 숲 등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거란다. 아마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네가 다니는 학교에서 너와 함께 과학수업을 들었다면 제대로 과학 성적이 나왔을 지 잘 모르겠다. 아마 너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지도 몰라. 하하하. 그러니 성급하게 네 머리 탓을 할 필요는 없어. 즉 과학자가 될 수는 없더라도 누구나 과학에 관해 어느 정도 공부할 필요가 있고 그래야만 우리의 인생이 좀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거야.

소년 : 과학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이 어떤 뜻이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나요?

철학자 : 과학은 무엇보다도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냉철하게 추론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점이 중요하지. 인간은 누구나 주관적인 감정이나 편견에 빠지기 쉬운데, 과학적 사고는 이러한 인간의 약점을 보완해 준다는 거지. 예를 들어, 인간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좀더 호의적이 되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비호의적이 되기 쉬운 법이어서,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다르게 보려는 성향이 있다는 거야. 너도 그런 경험이 있을 거야. 네 친구 중에 두 명이 똑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친한 친구의 나쁜 짓은 장난 정도로 간주하여 별 문제가 없는 행동으로 감싸주려 하는 반면, 몸시 싫어하는 친구의 같은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나쁜 행동으로 보고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는 거지. 그런데 과학공부를 통해 충분한 관찰과 실험 등 확실한 근거 없이는 어떤 결론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길러 두면, 일상의 삶 속에서도 쉽게 감정이나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과학적 사고는 일상의 삶 속에서도 늘 필요한 법이지. 그런데 과학을 무조건 어려운 학문으로만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난다 말이다.

소년 : 알겠어요. 지금부터라도 과학을 공부해 보겠어요.


소년은 오늘의 대화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과학을 포기하게 된 것은 내 과학두뇌가 나빠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과학 공부방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과학을 공부하다보면 과학적 두뇌에 있어 내가 남들보다 매우 부족함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미리 단정할 필요는 없다. 과학공부를 통해 나는 객관적 사고를 배우고 더 나아가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수업을 포기한 나로서는 과학을 혼자서 따로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이나 서적을 가지고 혼자 공부한다? 아마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시도를 해보자. 우선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과학책이 있는지 서점을 둘러봐야겠다.


■ 필리핀 간디국제학교 http://gandip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