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공부법, 하브루타 (전성수, 양동일 공저 / 라이온 북스)
G20 폐막식 때 오바마 대통령에게 질문 한 마디 못하던 개최국 한국의 기자들. 이 에피소드는 본지에서도 다룬 바 있지요. 최고의 지성이라 믿었던 한국 기자들에 대한 실망감과 한국 교육에 대한 실망감이 하늘을 찌른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본지 기자는 "질문을 못하는 이유를 토론 없는 환경"에서 찾았습니다. 가정에서, 교실에서 '질문'이 자유롭지 않은 환경과 '토론'하고 '대화'하는 훈련이 덜 된 때문이라고 말이지요.
세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사실 콩세알 도서관에서 '아랏차차 한국사'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제가 만난 세부 아이들은 비교적 대답을 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사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2학년 아이부터 4학년 아이까지로, 세부에서 생활한지 3~6년 이상인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아 상당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왜 직립보행이 중요한가?"
이 같은 질문들에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쳐냅니다. 하지만 토론은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반면,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훈련이 덜 된 때문입니다. 어울려 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서로 언성을 높이게 됩니다. 모두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 보입니다.
세부 아이들이 한국에서 온 친구들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의사를 펼칠 바탕이 되어 있다면,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점은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질문하는 공부법, 하브루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질문을 잃어버린 시대, 대답을 잃어버린 시대 부모와 아이들에게 해법이 될 이야기를 이 책이 담고 있습니다.
하브루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유대인 아버지의 자녀교육법입니다. 아버지가 중심이 되어 아이와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공부법입니다. 제 경우는, 아이들과 세부에 와서 살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저녁마다 '질문하는 시간' 30분을 가졌습니다. 그 시간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거침없이 질문하고 대답하고 '사고'합니다. 때문에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대화'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서로가 만족할 답을 찾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대화'가 된다는 것은 멋진 경험입니다.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최고의 뇌로 성장시켜라!
유대인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어?"라고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에게 "오늘 어떤 질문을 했어?"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세부에 온 뒤로, 나는 가능한 모든 식사를 직접 챙겼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는 되도록 느긋하게 먹었습니다. 목적이 허기를 채우려는 게 아닌 까닭입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과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는 시간에 우리는 집안의 소소한 문제들을 상의하고는 했습니다. 키우던 강아지의 배변 문제라던가, 옷장을 정리하는 문제, 가사 분업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눕니다.
일상의 거의 모든 일을 아이들과 이야기해서 풀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질문 속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여러 기질들과 생각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브루타는 '정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정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뇌를 자극해 사고력을 높이고 안목과 통찰력,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브루타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견해와 관점,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인데, 그 창의성을 가장 잘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브루타입니다. 하브루타는 본질적으로 타인과는 다른 생각,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 토론과 논쟁은 어떤 객곽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만듭니다.
당연한 것까지도 뒤집어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 능력, 경청하는 능력, 설득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단연 최고의 방법입니다. 하브루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납니다. 유대인 아버지는 자녀로 하여금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호기심을 일으켜 뇌를 격동시키는 이 "왜?"라는 질문이 아이를 최상의 인재로 키우는 유대인 자녀교육의 비밀입니다.
실제 아버지가 실천한 하브루타 사례들도 담아
하브루타의 원리를 이해하고 질문의 방식을 익히면 일상의 모든 것이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존댓말부터 시작해 도덕이나 인성, 공동체 의식 등을 가르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아이와 함께 나눕니다. 하브루타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자녀와의 애착형성이 좋아졌음은 물론이고, 아이의 교우관계, 학업성취, 문제를 대하는 방식 등에 놀라운 변화가 왔습니다. 형제와 다툼을 해결하는 방식이나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 등이 180도 바뀐 것은 물론입니다.
나는 하브루타의 기적이 보다 많은 가정에서 재현되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시험을 잘보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배움이 아닌 아이가 평생 흔들림 없이 삶을 이끌어가는데 필요한 배움이 하브루타의 비밀이라고 믿습니다.
궁금한 것을 묻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배움의 모습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옛 성현의 글을 읽으며 결국 '질문'하고 대답하는 훈련을 해왔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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