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고 세상으로 나서라, 인생의 굽이길에서 공자를 만나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신정근 저 / 21세기북스)
서른 즈음에, 그리고 다시 한번 마흔 즈음에 '논어'를 만나다
처음 '논어'를 읽은 것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였다. 전체를 읽었다기보다는 요약본 같은 것을 보았다. 그 무렵의 독서의 형태가 그랬다. 읽어야 할 명작과 고전이 너무 많았는데, 전체를 읽자니 부담이 됐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단 한권이라도 똑바로 읽었어야 했다. 물론 그랬더라도 어떤 구절은 결코 그 나이에는 이해할 수 없었을 터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 다시 한번, 입시를 준비하며 대충 읽었던 고전들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놀라운 것은 그 시절에 훑으며, '어렵고 지겹기'만 했던 고전에서 주옥 같은 문장들과 깨우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구절 놓치고 싶지 않아 밑줄을 치며 읽게 되는 고전 작품들이 있다. 어린왕자, 변신, 양철북 같은 소설류에서 지금 손에 다시 잡은 '논어'가 바로 그런 책이다. 나이 마흔 즈음 다시 붙잡은 논어의 한 수, 한 수가 그간 읽어온 숱한 자기계발서들을 허무하게 만들더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논어의 한 수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은 옳은가? 나는 '옳은가' 바른 '사유'의 길을 찾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싸운다. 보통 내 생각이 옳다거나 네 생각이 틀렸다거나 하며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려는 행위의 하나로 논쟁이 일어나는데, 문제는 이 논쟁이 보통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입김이 센 사람이 이긴다. 입김은 보통 그 사람의 재력이라던가 명성, 혹은 지위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어떤 이들이 이런 점을 이용하여 사람을 속이기 또한 쉽다. 재미있는 점은, 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묻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조직'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이 어떠한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달고 있는 명찰이나 내미는 명함, 혹은 통장의 잔고를 보고야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며 조직이나 기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현판이나 문서, 그 기관의 자본력을 보고야 믿음과 신뢰를 가진다.
공자는 이렇다 할 명찰이나 명함하나 없이, 학벌없이 3000여 명의 제자를 이끌며 이들을 탁월하게 조율해 나갔으며 이들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공자가 만들어낸 것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없는 '지혜'와 '의미'였다. 즉, 지혜롭고 의미가 있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일이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은 바로 이러한 시간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내 생각이 옳은가, 내가 옳은가를 스스로 짚어가며 생각할 수 있는 힘. 어떤 사람의 명함이나 조직의 규모나 형태를 확인하지 않고도 그 사람의 실체를 그 기관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생각의 힘'을 이 책을 통해 알아보자. 논어 101수로 '성숙' 한 삶으로 한번 크게 도약하여 보자.
진리를 따르며 자신을 무한히 교정하다 (취도이정)
하지만 '진리'가 무엇일까? 우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의문을 가져야 한다. 공자는 '나' 자신이 품격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 덕목들을 펼쳐야 하는가, 어떻게 주위 사람들과 목표를 함께 하는가, 그러면서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를 완성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결국 나를 바르게 서게 하고 주위를 바르게 서게 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은 논어에서 핵심이 되는 101수를 크게 여섯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응용, 지도력, 모델, 형상화, 덕목, 핵심가치, 이 6가지 영역은 또 세부 영역으로 나뉘어 일상에서도 논어에 담긴 지혜를 내 것으로 체화하도록 돕는다.
나의 경우, 1강 '행복한 삶을 위한 공자의 매뉴얼'을 읽으며 지금 운영하고 있는 콩세알 문화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어쩌다 보니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나는 이 일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잘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으나, 잘할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 때문에 큰 방향을 세우기가 조심스러웠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해야 할 일에, 다른 사람들을 내세우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고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앞세워 방패로 삼으려고도 하였다. 또한 내가 할 일과 남이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해 헤맬때, 바로 이 책을 만났다.
제대로 배워야 한다, 알아야 산다, 정말 그러한가?
대학에서 전공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베껴오라 하셨다. 초등학생도 아닌 대학생들에게 책을 베끼는 일을 숙제로 내어 주시다니, 수업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대학에서 특별한 걸 공부할 줄 알았는데,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는 '필사'를 해오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학기에 2편의 장편소설을 베껴 쓴 뒤, 나의 문장은 이전과 아주 달라졌으며 구성력과 캐릭터를 설정하고 묘사하는 능력도 좋아졌다. 그렇게 영향이 큰 것은, 창작 수업에 제출한 작품들이 크게 호평을 듣게 되어 깨우쳤다. 그랬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필사였지만, 실제로 해 보니 하면서 배우더라, 그리고 몸으로 익히게 되더라.
우리가 사는데, 얼마나 많은 지식이 필요할까? 많이 알아야 잘 살까? 지식을 채우기 위해, 어려운 책을 읽고 어려운 용어를 주고받아야만 공부일까? 공부에 대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많이 배웠다고 꼭 투자를 잘하고 사업을 잘하고 경영을 잘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핵심이다. 나무에 비하면 고갱이다.
이 책의 저자는 논어의 중요한 고갱이를 꽉 잡고 바로 지금 당신이 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나를 다듬고'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고 지금껏 걸어온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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