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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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흥미로운 전설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완결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일본작가로는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무라카미 하루카는 책을 별반 좋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을 만한 이름의 작가다. 일본의 패션지 '앙앙' 역시 '논노'와 함께 한국인에게는 가장 친숙한 패션잡지였다. 약 20여년 전의 고등학교 대학교 여학생들에게는 패션바이블로 통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무라카미 라디오'를 엮은 단행본이다. 책의 서론에서 무라카미는 '왜 아저씨 소설가가 왜 어울리지 않는 패션잡지에만 칼럼을 기고해 왔는지'를 이렇게 밝혔다.
"세상 사람들이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앙앙>독자는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고, 나는 상당히 수준이 높은 아저씨여서 양자 사이에 공통된 화제 따위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렇죠? 하지만 차라리 공통된 화제따위 없다고 마음 먹으면 되레 쓰고 싶은 것을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작가 본인의 변처럼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펼치면 곳곳에서 예의 바르나 조금 소심하고 싶은 친절한 노년의 신사를 만날 수 있다. 삶과 실존에 고뇌하는 명망있는 문인의 아우라는 일부러 찾을래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한 그가 전하는 에세이의 토픽 역시 소소하고 심심한 주제들이어서 연한 간장소스를 곁들인 따뜻한 순두부 한 덩이를 먹는 것처럼 가볍고 편하다.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누가 채소의 기분을 상상이나 했을까?"라는 시인 정호승의 말처럼, 이번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역시 아무도 글로 담지 않았던 야릇한 기분이나 공기의 감촉을 달라지게 하는 미묘한 분위기를 정확하게 표현해낸다. 작가 특유의 고강도 더듬이로 분명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포착해낸 일상의 조각들이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평소 낯가림이 심하기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펼치는 순간, 편안한 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며 가끔은 수다스러워지는 하루키 씨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를 연재하다보면 '꼭 쓰게 되는' 토픽이 몇 가지 나온다. 내 경우, 고양이와 음악과 채소 이야기가 아무래도 많다.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것은 즐거우니까.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것. 좋아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다. 읽는 분들 역시 '이런 건 진짜 싫다. 짜증난다' 하는 문장보다 '이런 글 진짜 좋다. 쓰다보면 즐거워진다' 하는 문장 쪽이 읽고 나서 즐거우시죠? 으음, 그렇지도 않으려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채소를 좋아한다. 여자도 꽤 좋아하지만, 여자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뭔가 곤란한 얘기도 나오므로(하고 슬쩍 뒤를 돌아본다), 아무래도 제한이 있다. 그런 점에서 채소는 마음 편하고 좋다." -p.212 '제일 맛있는 토마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