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는 단순한 풀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여는 상징
야생초 편지 (글과 그림 황대권 / 도솔)
저자 황대권은 1985년, '학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3년 2개월 동안 대구, 안동, 대전 등의 교도소에서 갇혀 지냈다. 서른 살부터 마흔네 살의 황금 같은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며 저자가 한 일은 좀 엉뚱하게도 풀을 뜯어먹고, 풀을 기르고, 풀과 대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만성기관지염을 고치려고 풀을 뜯어먹다가 풀과 사귀게 되고 만 것이다.
풀 몇 포기밖에 없는 교도소에서 저자가 해낸 일은 무척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었고,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전공자답게 야생초에 대해서는 그 생김새나 주성분, 약효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 야생초의 생김새를 꼼꼼하게 그린 수채화가 볼 만하고, 각각의 야생초에 대한 설명이 이 수채화만큼 생생해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몇 포기 채집하고 풀씨를 뿌려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야생초 이야기와 함께 실린 감방 식구들 이야기. 귀찮게 구는 파리는 거미줄에 걸고, '사상이 불온한' 거미는 사마귀에게 주는 아기자기함이 애진하면서도 재밌다. 풀, 생쥐와 고양이, 비둘기, 모기에 이어지는 대규모 단작 농업데 대한 비판, 생태농업의 전망에 이르면, 책날개에 씌인 '모든 것에 편재한 하느님'이라는 말이 다시 떠오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비는 그냥 물이 아니라 그 이상이야. 가물 때 물을 주면 시들지는 않지, 그런데 하늘에서 비가 오면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이 풀들이 아우성이야, 비가 온 다음 날 운동을 나가서 풀들을 들여다 보면 말쑥한자태로 하루 사이에 부쩍자란 키를 자랑하고 있거든. 천지의 기를 듬뿍 머금은 물을 원없이 맞으니 어찌 좋지 않으리...
교도소가 인간을 순화시키는 기능을 하려면 직석 위주의 건물 보다는 곡선이 들어간 건물, 그리고 안온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식물들을 키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토종이 사라진 사회, 토종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토종의 씨가 보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이 단일화 되고 그 단일화 된 품종에 치명적인 병충해나 재해가 일어난다면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평화란 절대적인 평온이나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동적인 평형상태이다. 즉, 사회가 평화롭다 함은 서로 내부적인 교류와 대화가 진행되어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 된다.
야초들은 하나 하나가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들이 아직 그 가치를 모를 뿐이다.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없에 버리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암담한 수감생활 속 아생초와 자신만의 풍성한 시간을 엮어가는 작가의 시간들이 곱씹고 또 곱씹어보아도 맛깔스럽고 재미있게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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