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리, 시골 엄마가 차린 밥상

요리 좀 한다는 아줌마 넷이 입 모아 "진짜 한국맛" 인정

그녀들은 모두 주부 10년차(아, 연차가 조금 모자란 그녀도 있지만 거의 가까우니, 그렇다치자)다. 본격적으로 '부인' 혹은 '아내'라는 타이틀로 주방에 선 경력만 그쯤된다.
이미 '만시간의 법칙'은 거뜬히 돌파했다고 봐야겠다. 요리에 관해 전문가 수준에 미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맛 비평가로는 꽤나 까다롭다 하겠다.
그녀들은 다시다와 미원의 맛을 구별할 수 있으며, 한국 김치와 현지 세부에서 담근 김치를 감별할 수 있다. 조금 더 미각이 발달한 그녀는 한국식으로 조리가 되었는지, 필리핀식으로 조리가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고 자부했다. 이날 모인 4인의 '평가단'은 대략 이런 프로필을 가졌다.
이날 그녀들의 저녁에 올라온 '요리'는 고동리의 묵은지 등갈비찜과 옥돔구이. 그리고 '해파리 냉채'였다.
고동리는 얼마전 교민연합뉴스에 전면 광고를 통해, "해남에서 들여온 김치"와 "대장금도 울고갈 맛"이라는 카피를 달았다.
4인의 맛 평가단은 그 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말 "해남에서 들여온 김치"인가.

고동리-시골-엄마가-차린-밥상-1.jpg 고동리-시골-엄마가-차린-밥상-2.jpg

배추의 아삭함이 그대로
부드러운 등갈비가 사르르
여유가 깃든 깊이 있는 맛

여행사에 근무하며 두 딸을 키우고 있는 K씨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등갈비찜에서 김치 한쪽을 찢어내어 뜨거운 밥 위에 올렸다. 뜨거운 김이 살짝 가시자, 그녀는 한 숟가락 푸짐하게 담긴 묵은지와 밥을 맛보았다. 지긋이 감은 눈은 더 없이 진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맛 평가단은 잠시 그녀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이 맛이야. 해남에서 온 묵은지. 뭉긋이 오래 끓였는데도, 배추의 아삭함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곰삭은 맛, 해남 묵은지 맛 그대로야."
마주 앉아있던 10년차 세 아이 엄마 L씨는 물로 입을 헹군 뒤, 이벤엔 등갈비살 한점과 묵은지를 뜨끈한 밥 위에 올렸다. 젖가락으로 등갈비살과 뜨끈한 밥을 품은 묵은지를 입안에 넣을 때, 그녀의 눈가가 환하게 밝았다.
"부드러운 등갈비는 입에서 달콤하고 고소하니, 사르르 녹고 묵은지가 콤콤하니 맵싸하네요. 묵은지 자체가 맛이 좋은니, 별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고도 이렇게 깊은 맛이 나는 것이지요."
타고난 미각을 자랑하는 J씨. 그녀는 국물부터 맛보았다.
"긴 시간의 맛이 살아있네요. 한국 요리사가 조리한게 분명해요. 모든 음식이 그렇듯, 맛은 정성의 문젠데 서두르고 조급하면 간이 안 맞기 일쑤지요. 하지만 이렇게 불 조절도 잘 되고 시간도 충분히 들인 음식은, 제대로 제 맛을 낸다니까요. 등갈비에서 우러난 국물이 묵은지와 제대로 결합했다고 할까요."
마지막으로 일행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그녀, W씨는 묵은지와 등갈비살 한점을 밥에 올려 국물까지 두른 뒤, 쓱쓱 비벼 먹었다.
"J씨 말처럼 깊이가 있네요. 초급을 다투는 성급한 맛이 아니라 밥에 비벼 먹을 때, 진한 국물이 밥알 하나하나를 코팅하는 느낌이에요."

제주도 옥돔을 바싹하게 구워
말없이 비워지는 접시

묵은지 돼지갈비찜과 함께 식탁에 나온 요리는 옥돔이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좀 걸어보고 옥돔도 드셔본 분이라면, 이 음식이 얼마나 귀한지 알 것이다.
특히 세부에 오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갈치나 고등어류가 아니면 인근 해역에서 나온 생선을 사먹기를 두려워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다금바리로 소문난 라푸라푸 정도.
그렇게 바다를 인근데 두고도 생선 먹기가 어려운 세부에 오래 살았다면 이 옥돔구이가 더 없이 반가울 것이다.
K씨는 "제주도에서도 먹기 힘들다는 고급 생선인 옥돔을 여기서 구이로 먹다니.", J씨는 "옥돔은 바싹하게 튀겨야 제맛", L씨는 "옥돔은 맛 본적이 없지만, 로컬 생선을 쫙 꿰고 있으니, 그 맛을 견줄 수 있을 것", W씨는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라고 말하며 각자 옥돔의 허리춤을 떼어 맛을 보았다.
그녀들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바쁘게 젓가락만 오갔다. 어느새 옥돔은 뼈만 허옇게 드러냈다. 뼈를 바싹하게 튀겨야 한다는 J씨가 기꺼이 옥돔의 갈비를 차지했다.
접시는 순식간에 말끔하니 비워졌다. 맛 평가단의 평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말이 필요없는 맛.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던 W씨의 젓가락을 바쁘게 오가게 만든 특별한 맛을 옥돔은 가졌던 것이다.

해파리 냉채와 산미구엘 라이트
술안주로 일품인 요리

해파리 냉채를 즐겨 먹던 사람들이라면 먼저 세부와 막탄의 몇몇 유명한 다른 식당을 떠올릴 것이다.
이곳, 고동리의 해파리 냉채는 우리가 기존에 잘 알던 그 맛이다. 맛이 있다. 하지만 술과 함께 안주 삼아 먹기에는 더 없이 좋다. 적당한 식사를 마친 뒤에, 맥주로 반주를 삼을 때라면, 더더구나 이렇게 부담없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안주가 좋지 않을까.
L씨는 중식 요리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며, 짜장면과 짬봉을 제외한 요리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해, 이날 해파리 냉채를 처음 맛보았다. 그녀는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고 평했다. 톡쏘는 맛과 씹히는 맛이 좋다는 것. 특히 산미구엘 라이트와 어울린다는 것이 한때 주당이었던 그녀의 평이었다.
이날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평가했던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반찬'이다. 한국식 밑반찬들이 모두 감칠맛이 나서, 굳이 옥돔구이가 아니더라도 해파리 냉채가 아니더라도 등갈비찜 하나에 반주를 곁들여 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는 것. 특히 마늘잎 묵은지가 일품이다.

최근 고동리 공항점과 마리곤돈 점은 막탄 전역을 대상으로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