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어느 헬퍼 이야기 1

어느 헬퍼 이야기 1

필리핀에 살면서 현대인의 모든 가정에 구비되어 있는 가전제품처럼, 가장 기본적인 생활문화가 헬퍼 문화입니다. 필리핀에서 장기간 살아온 제게도 많은 헬퍼들이 거쳐 갔습니다.

하루 만에 그만둔 애, 며칠하다가 때려 친애, 손버릇이 나빠서 짤린 애,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나간 애, 눈맞아 동성애로 빠지다가 그만둔 애, 사기스팸보고 로또 맞은 줄 알고 당장 그만둔 애, 나 없을 때 우리 아들 학대한 보모까지 참 많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헬퍼에 대한 인간백과사전과 분류별 행동패턴으로 책 한권을 써도 될 정도지요.

그래도 그 중에서는 일 잘하고 손 안타고 성실한 애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애들은 오래 근무하고 또 급료도 올려서 주고 잘해줍니다. 그래도 외국집이라서 그런지, 말이나 정서가 안맞아서 그런지, 아무리 음식도 나눠주고 잘해준다 해도 1년 정도 있으면 엉덩이가 들썩이는지 그만둬 버리더군요. 그러다가 다시 또 돌아오고.... 이렇게 반복한 아이가 저희 집에도 있었습니다.

처음 저희 집에서 일했을 때는 22살로 남쪽지역 민다나오 무슬림 지역에서 온 아이였습니다. 가족주의가 강해 화장실 갈 때도 꼭 둘이 가는 한국 사람들처럼 이 나라 사람들도 회사 이력서 낼 때도 친구와 옵니다. 그랬듯이 외지에 모르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촌사이인 이들도 같이 일을 구하러 왔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고 청소하고 정돈하고, 이 아이가 일했던 때는 집안 구석구석이 훌륭히 정돈되고 깨끗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 헬퍼가 그만둔 때에는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 그 그만둔 헬퍼의 몫까지 해대니 어찌 안 귀여울까요?

뚱땡이 못생긴 사촌이 일도 잘 못하고 저희 셋째 아들 간식까지 뺏어먹는 밉상짓을 해도 사촌을 해고하면 같이 그만둘까봐 한쪽 눈을 감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에 있다가 그만두다를 반복하기를 7년, 다시 일 구한다고 찾아와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다 좋으데 한 가지 결정적인 외모의 흠이 있습니다.

필리핀은 물이 석회질이고 빈곤층들은 영양도 안 좋고 또 이도 잘 안 닦기 때문에 치아가 무척 안좋습니다. 헬퍼로 일하는 이들의 수입 수준으로는 치과 비용이 부담되어 치과는 언감생심 가질 못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빈곤층 경우에는 젊은데도 불구하고 치아가 없거나 시커멓게 썩은 이를 가진 보기 흉한 경우가 많습니다. 치과 치료비가 비싸니 충치 등으로 고생을 하다 아예 이를 뽑아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녀도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얼굴은 귀엽게 생긴 편인데 앞니 세개가 시커멓게 썩어 반이 잘려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창피한지 웃을 때는 입을 가리고 웃고, ,또 단것은 절대로 안 먹더군요.

월급 받아 조금씩 모아 자신에게 투자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제 마음일 뿐 월급은 받는 즉시 부모에게 보내고, 아니면 한 달 월급이 넘는 핸드폰을 살 생각은 하면서도 자신의 이에는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고릴라 같이 생긴 사촌도 결혼하여 쌍둥이를 낳는데 그녀는 오로지 청춘을 헬퍼로 일하면서 보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재작년에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치과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로컬 치과에서 치료하면 워~낙이 그녀 같은 증상의 애들이 많은지라 앞니를 뽑고 프라스틱으로 이 세 개를 해 넣는데 십 만원 밖에 안들더군요.

‘그녀의 인생이 좀 나아지겠지, 연애도 하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잘 살면 되겠지....’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그런데 치과 치료 후 이 아가씨가 너무 외모에 자신이 생겨 자만했는지, 마치 못난이가 성형수술로 새 사람이 된 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모든 이들이 자신만을 주목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자아도취에 빠지듯이, 그녀가 남자친구를 사귀더니 아주 방종으로 치닫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 너도 이제 나이가 나이니만큼(당시 28세) 결혼해야지...’하는 생각에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짐짓 모른척 했는데 이것(?)이 이 남자 저 남자로 갈아타더니 심지어는 우리집 안까지 남자를 끌어들여 헬퍼방을 아주 열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라 특히 저소득층들은 사랑에 목숨을 겁니다. 그것도 육체적인 사랑에 말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기에 하루하루를 즐기며 감정에 충실하게, 축제와 홀리데이와 생일과 파티에 목매어 사는 것 같습니다.

삶이 생각하면 버겁고 무겁기에 매일을 생각 없이 가볍게, 그 하루만을 보며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도 목을 맵니다. 그렇기에 영화나 TV에서도 맨날 사랑타령 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어떻게 되었냐고요? ^^ 여러분의 상상 속에 답이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