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세부 지진 기억나세요? - 그때 그 이야기

2013년 세부 지진 기억나세요? - 그때 그 이야기

2013년 10월 15일 세부에서 한시간 반 정도 떨어진 보홀 섬에서 7.4도의 강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이곳 시간으로 아침 8:13분경인 것 같은데요, 마침 이날이 무슬림의 라마단 마지막 날이라고 국경일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애들도 학교에 안가서 늦잠자고 있던 시각이었고 저는 아침 8시전에 일어나 침대 위에서 아침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기도하고 있던 중에 침대가 흔들리더군요. " 앗! 지진이다!" 하고 생각한 후 좀 흔들리다가 멈추겠지 했던 제 바람과는 달리 점점 흔들림이 심해지더군요. "어? 이거 장난 아니네..." 하는 생각에 심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자고 있는 남편을 "일어나요, 지진이야!!" 하며 깨우고 막내를 안고 일단 도망칠 통로를 확보하러 방문을 열고 딸내미 방으로 가려 하는 순간 울 두 딸내미들이 방에서 뛰어나와 2층 거실에 있는 식탁 밑으로 숨더군요.

"아!쟤네들은 됐네" 하고 막내도 그곳에 떠밀어 넣은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셋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를 불러보니 화장실에서 나오더군요. 제 딴에 도망칠 곳을 확보한다고 방문이 아닌 화장실 문을 열러 갔다는....비록 엉뚱하게 화장실 문을 열었지만 그래도 2년 전 한국에서 학습체험으로 간 소방서 재난대비 훈련의 효과를 톡톡히 본 현장이었습니다.

남편은 지진의 흔들림에 TV가 떨어져 깨질까봐 TV를 붙들고 있었답니다. (산지 얼마 안 된 대형 TV였어요...에효~)

흔들림이 멈춘 후 1층으로 내려와 사태의 흐름을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지진은 멈춘 상태였고 체감으로 느끼기엔 4,5도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거실장에 꽂아놓았던 상단의 책들이 쏟아지고 또 벽에 금이 갈 정도였으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무사했어요)

그 후에도 2~3도 정도의 여진이 하루 종일 계속 오더군요.

지진 후 바로 정부에서 전기와 물을 끊어 버리더군요. 한 시간 뒤에는 다시 공급되었지만 그 후 휴계령이 내려 상점 및 쇼핑센터 그 외에 오픈하고 있는 모든 사무실의 문을 닫으라는 정부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그보다 2년 전, 2011년에도 세부 근교에서 지진이 났었습니다. 당시 세부시내가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세부는 섬이지만, 의외로 다른 섬들에 둘러싸여 있고, 세부 시내는 산들에 둘려 싸여서 쓰나미에도 안전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지진도 별로 없는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세부 근처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그 여파가 세부에도 미치자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은 세부 사람들이 아~주 우왕좌왕합니다.

전 국가적인 불감증의 나라 한국과는 달리 시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몇날 며칠을 그거 가지고 우려먹듯이.

어떤 사회적 책임보다도 가족이 최고인 가족 중심의 나라인지라 지진이라는 위기상황 속에서 가족 귀속 본능과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모두 동요하고 울고불고 걱정하기에 업무가 진행될 리 없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저희 센터(화상영어센터)도 며칠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당시 인터넷도 끊겨버렸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계속되는 여진에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혹시 모르니 준비라도 해놓자 싶어 비상 대피용 가방을 쌌습니다. 물통하고 이불 보따리 하고 대피가방을 미리 차에다 실어 놓았지요.

그리고는 지인들에게 비상물품과 이불과 물통 등을 미리 싸둘 것과,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울것, 여권과 현금을 준비해 놓을 것. 그리고 밤중에 지진이 다시 왔을 경우 집에서 자기 불안하니 전신주가 없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 머물도록 문자를 넣었지요. 이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더군요.

먼저 저희 남편님같은,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무식한(?) 자신감에 대한 반응 입니다. "괜챦아! 괜챦아! 이젠 끝났어! 다신 안와!". 근거없는 확신!!

또 다른 반응은 오버입니다. 그건 한국인이던 필리핀인이던 똑같더군요.

그 당시 딸들이 세부에 있는 돈 있는 사람들만 다닌다는 국제학교에 다녀서 그런지 벌써 몇몇 필리핀 친구들은 외국으로 뜨더군요.

잦은 여진으로 아이들은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다가, 그나마 저녁때 아빠를 찾아간 당구장 TV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를 시청한 후 마음이 많이 가라앉더군요.

"엄마!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보니까 이제는 괜찮아졌어!" 하는 겨우 초딩 2학년의 아들넘을 보고 이런 심리 때문에 사람들이 재난이나 테러 등의 자기가 컨트롤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잊기 위해 더욱더 자신이 좋아하고 즐겼던 것에 탐닉하거나 빠져들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재난이 아니더라도 실직이나 생활고, 그리고 다른 여러 불안과 긴장의 상태에서 사람의 심리는 비슷하겠죠?

천재지변, 테러, 전쟁 등의 인간의 규칙이나 법제도가 다 날아가 버린 상태, 통제가 안되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그런 불안감을 누르고 잊고자 더욱더 폭력이나 탈취, 강간, 파괴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해하기 싫지만 이해가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