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지진에 이어 찾아온 초강력 태풍

2013년 지진에 이어 찾아온 초강력 태풍 - 그때 그 이야기

2013년 10월 15일 보홀과 세부를 강타한 지진 후 여진의 여파로 보름이나 학교도 휴교했더랬습니다. 마침 11월 초였던 세부의 가장 큰 명절 ‘올 세인트스 데이’가 겹쳐서 겸사겸사 연짱으로 휴교하게 된 것이지만, 당시도 여진은 체감으로 3~4도 정도의 규모로 하루에 한 두 번 씩 살짝 왔다가 가시곤 했었지요.

처음에는 잦은 여진으로 불안하더니 지금은 밤에 여진이 올 경우엔 언제 여진이 왔나 할 정도로 무감각해지면서 잠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당시많은 선교사님들과 의료진들이 지진의 근원지였던 보홀섬으로 가서 사역하신다고 출발도 하고 준비도 하고 또 세부와 각 지역에서 기부와 도움의 손길을 준비하던 중에 엎친데 덮친다고 이번엔 큰 태풍이 오더군요. 2013년 11월 초속 105m로 필리핀을 강타해 1만2천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초특급 태풍 '하이엔'이었습니다.

태풍에 대한 경고는 세부시의 경우엔 태풍이 오기 수일 전부터 있었습니다. 당시로부터도 5~6년 전 한번 큰 태풍이 와서 커다란 간판에 걸려 있는 광고지는 다 너덜너덜해지고 광고판 넘어지고, 나무들 쓰러지고, 유리창들이 깨지고 사람들도 많이 죽고... 했던 기억들이 있는지라 태풍이 오기 전에도 많은 경고와 위험성에 대한 공지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학습능력이 있는 동물인지라 이번에는 세부시에서 미리 겁먹고 많은 안내와 경고를 하더군요. 그 덕분인지 광고판의 광고지들도 찢어지지 않게 다 밑으로 똘똘 말아났더군요.

세부사람들은 겁이 많습니다. 아니 필리핀 사람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아직 태풍이 오지도 않았는데 애들 학교는 목요일부터 휴교하고.... 햇볕 쨍쨍, 비 올 기미도 안 보이는데 덕분에 애들만 신났죠.. 땡자땡자.....

하지만... 11월 7일 목요일 저녁5시 부터 구름이 낮게 깔리는게 웬지 모르게 태풍의 전야처럼 하늘도 검고 구름도 낮고 바람은 없고 고요한 것이 미리 태풍이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느끼는 감정 때문인지 스산한 기분과 더불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정부에서도 정전에 대비하고 또 1주일 치의 식량도 준비해 놓으라며 계속해서 100년 만에 찾아오는 강력한 태풍이라고 반복 경고하는 통에 쇼핑센타에 식품과 양초를 사러 갔더니 다른 것들은 다 있는데 이 나라 서민들이 잘 먹는 필리핀 라면만 동이 났더군요.

중산층이 거의 없고 빈민과 잘사는 사람만 있는 이 필리핀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기에 통조림이나 샴푸, 세제, 음료수, 가루비누 등등의 모든 생활용품이 1회용만한 싸이즈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라면도 한국라면의 반만한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헬퍼들의 식사를 보면 라면을 끊어서 일부러 불려 먹더군요. 그러면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이 서민들이 비상식량을 산다 해도 라면 몇 개 정도겠지요.

태풍의 직격탄을 맞은 레이떼 지방의 서민들의 그 후 삶은 말 안해도 짐작하실 겁니다.

금요일 아침이 되어서 9시부터 바람과 더불어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10시부터는 점점 강해지더군요.

창문이 깨질까봐 십자로 테이프를 붙여놓고 바람이 점점 강해지면서 판자로 대충 지어놓은 앞집 담벼락이 무너지는 것도 보았고 또 집 앞 놀이터에 있는 나뭇 가지가 부러져 날아가는것도 보았고 그러면서 11시가 되니까 바람과 비가 잦아지더군요. 바로 앞집, 2층은 체육관이었습니다. 판자떼기로 세워놓은 벽채가 다 날라갔더군요.

태풍 하이엔이 왔을 때 세부는 비가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전10시쯤이 되니까 바로 정전이 되더이다. 모든 통신장비가 땅속에 매몰된 한국과는 달리 아직도 전봇대다 보니 태풍이나 바람이 세게 불어도 금방 정전이 됩니다. 그래도 12시가 넘으니 바람이 잦아들고 오후 2시쯤에는 부슬비만 내리고 태풍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된 것이 확실히 느껴지기에 다시 회사로 외출도 하고 사람들도 나다니기 시작하더군요. "에이~ 생각보다는 안쎄네... 많이 걱정하고 준비했는데, 별거 아니었잖아" 하는 생각과 별다른 큰 피해가 없는 것 같아 안심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쇼핑몰 앞에 세워놓은 커다란 야자수 2두 그루가 쓰러지고 간판들도 넘어지고 꺽어지고... 집안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바람이 쎄긴 쎘구나 ....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 다음날 뉴스에서 나오는 레이떼 섬의 영상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세부시내만 다행히 안전했고 다른 곳의 피해는 어마어마하게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세부 시내는 건물도 많고 또 시멘트로 잘 지어져 있기에 태풍에도 크게 부서지지 않고 견디어 냈던 것 같습니다.

또 세부섬은 앞에 있는 레이떼 섬과 그 다음에 위치한 보홀섬의 덕분으로 태풍이 많이 약해져 세부섬에 상륙했을 땐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구요. 그래도 세부 북쪽에는 피해가 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