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세부에서 15년이란 장기간 살면서 많은 이웃들을 알게 됩니다.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에서부터 깊은 정을 나누다가 헤어진 이웃들, 그리고 별로 기억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
필리핀에 살면서 처음 이곳으로 이주해 오신 분들을 보면서 가끔씩 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또 그때 제 자신조차 몰랐던 제 안의 편견과 차별과 오만과 무례에 가득 찼던 모습들을 이곳에 갓 오신 분들이나 장기간 계신데도 불구하고 여전하신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반성도 하곤 한답니다.
처음 어린 딸아이 둘을 데리고 이곳으로 어학연수를 왔을 때나 기러기 엄마로 정착했을 때부터 교민으로 자리잡기까지 이 모든 단계를 거친 저로써는 어학연수 맘으로써, 기러기 엄마로써, 또 교민으로써의 필리핀인과 필리핀이란 나라, 그리고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먼저 어학연수로 왔을 때에는 하숙집을 찾아 그곳에 있었습니다.
어차피 단기로 있다 갈건데 집안일에서 벗어나 애들만이 아닌 저 또한 공부하면서 편히 있다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때에는 세부사람이나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관심도 없었고 단지 영어공부에만 집중하고 주말엔 아이들 데리고 쇼핑센터 및 리조트, 수영장이나 놀러 다니며 지냈었지요.
한국에서 여유롭게 살다가 세부로 어학연수를 온 개인적인 배경에, 그리고 그때에는 IMF를 막 벗어난 때였기에 '필리핀에 먼저 와 있는 한국인들은 불황을 피해, 아니면 그 불황기에 경제사범이나 사고를 치고 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당시 세부 교민들을 내려보고 깔보던 교만한 마음에 저에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난 교민과는 달라’라는 마음으로 교민과 섞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또 교민으로 치부받는 것도 거부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불행히도(?) 어학연수 기간에 세부를 두번 방문한 남편이 되려 세부에 꽂히면서 이곳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당시 남편은 왕성하고 돈 잘 벌리던 사업체를 한국에서 경영하고 있던 관계로 시부모님을 비롯한 아이들 3명과 저 이렇게 여섯 식구가 기러기 가족으로 세부로 이주해 왔고 남편은 한 달에 한 번씩 항공사와 하늘에다가 돈을 흩뿌리며 생활하기를 1여 년 이어갔습니다.
물론 기러기 엄마 시절에서도 저는 극구 ‘교민’이란 단어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며 그래도 이 나라에서 몇 년간을 살아야 하기에 정보수집차 그 당시에 UC빌딩에 위치했던 세부한인회에서 자원봉사로 일을 하고 한인교회에도 출석하면서 세부 생활의 정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젊어서부터 경험한 외국에서의 생활과 그 위에 영어가 된다는 자부심이 교만함이 되어 이 나라 사람들과 교민들을 나보다 낮게 보며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겁고 회상하기도 부끄러운 시기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직도 그 당시의 저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이곳으로 이주해 오시거나 어학연수나 기러기 엄마, 그 외의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로 이곳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심정이 그 당시 저의 잘못된 마음과 닮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쓰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차림새만 봐도 교민인지 기러기 엄마인지, 오신지 얼마 안되신 분이신지 대충 짐작이 가는 고수(?)의 상황에 다다른 세부거주 15년차의 저로써는 그분들의 말투와 행동만 보고서도 이 나라사람들과 교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랬기 때문이지요.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실제로도 적은 교민 수에 비해 한국에서 범죄를 짓고 세부로 피신해 온 경제사범이나 기소중지자들이 수 백명에 달했습니다. 단순하게 수학적 반올림하면... 그 숫자가 무려 1천에 이를 될 정도로 많았더랬습니다.
세부한인회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더욱더 그런 정보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었지요. 그렇기에 저는 더욱더 세부의 한국인들을 경계하고 무시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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