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핫플레이스에서 '미숫가루'와 '한국적 여유'를 만나다
작가 김훈의 신작을 만났다. 세부의 커피숍에서. 아얄라몰, 만다린호텔, 퀘스트호텔 등이 밀집한 세부시티의 관광, 쇼핑, 비즈니스 타운 중심부에 커피 앤 디저트 카페 '에이플러스'가 자리하고 있다. '카페의 상호로 짐작해 볼 때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별업체이고 디저트 카페가 컨셉이니 와플이나 다양한 케이크를 볼 수 있겠다'는 일반적인 예상을 머릿속에 굴리며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거기서 김훈의 신작 '라면을 끓이고'를 만난 것이다.
카페 한쪽에 작은 책장이 서있고 그 안에 많지는 않지만 깨끗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는 게 눈에 띄었다. 평소 종이에 활자가 인쇄된 책과 잡지에 습관적인 관심을 갖는 까닭에 음료를 주문하기도 전에 먼저 책장 앞에 섰다.
최근 발행된 남성지 GQ의 한국어판, 20대를 타깃으로 했을 법한 한국 여성지와 일본 패션지들. 시계에 관한 전문 애호가 입문서, 남성 패션스타일 가이드 북, 여행서 등등 다양한 목록 사이에 김훈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이 보였다. 게다가 이책들은 작년 후반에서 올 초에 발행된 신간들이었다.
누가 먼저 집어갈세라 얼른 김훈을 골라 팔꿈치 안쪽에 끼고, 음료를 주문하러 돌아섰다. 평소 하루에 대여섯잔의 커피는 너끈히 마셔주는 '커피홀릭'인 까닭에 커피를 주문하리란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온 오더는 "미숫가루?". 눈 높이에 세팅된 메뉴가 자동으로 읽혀진 까닭일까.
그렇게 나온 큼직한 미숫가루 컵을 들고, 2인용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책장을 펴 첫 페이지를 읽어 내리다. 한 모금 빨아올린 미숫가루는 입안을 걸쭉하고 고소하며 달콤하게 채웠다. 읽던 책에서 눈을 떼 주변을 다시 돌아보았다.
월넛 톤과 다크 부라운 톤의 나무소재로 마감된 세련되고 쾌적한 공간을 모던하고 클래식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일률적이지 않게 믹스 배치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신사동 가로수길 혹은 이태원 경리단길에 자리했다 해도 빠지지 않을 세련된 인테리어 공간 안에서 기능성과 미적 감각을 매치한 의자에 몸을 푹 기대고 앉아 미숫가루를 마시는 나를 인지했다.
'뭐야! 여기 진짜 대박인데!'
에이플러스의 미숫가루를 조금 더 말하려 한다. 서울의 세련된 핫플레이스를 연상시키는 카페 에이플러스에서 마신 미숫가루는 '할머니의 맛'이었다. 엄마가 타준 미숫자루는 조금 묽고 밍밍한 맛이었다. 단맛은 가능하면 줄이고, 한 번에 마시기 좋을 만큼의 농도를 맞췄다. 그런데 할머니가 타준 미숫가루는 참 걸쭉하고 달았다. 직접 찌고 말리고 갈아 만든 미숫가루를 한 숟갈이라도 더 넣어주려는 마음과 손주가 달고 맛나게 먹길 바라는 욕심에 넣은 넉넉한 꿀 혹은 설탕의 단맛이 더해져 더 걸쭉하고 단 할머니표 미숫가루가 되었다. 밍밍한 미숫가루를 타주던 엄마도 할머니가 되더니 내 아이들에게 내주는 미숫가루는 달고 걸쭉해졌다.
카페 에이플러스 미숫가루를 한 모금 마시고 '너무 달다' 싶었는데, 두 모금 넘길 땐 만족스럽고, 세 모금 재는 위안이 되었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부디 카페 에이플러스의 미숫가루가 항상 지금의 맛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에이플러스의 다른 메뉴들도 훌륭하다. 한국의 전문 바리스타가 조율한 커피는 필리핀 원두와 수입 원두를 적절히 블렌딩해 세련되면서도 매끄럽다. 브런치 메뉴로 추천할 파니니는 바게이트를 사용해 베어 물때 '와사삭' 씹히는 크리스피한 식감을 제대로 살려냈다. 직접 만드는 벨기에 와플도 달지 않고 고급스러운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오전 8시부터 1시30분까지 커피와 파니니를 묶은 브런치 세트를 199페소에 판매한다.
세부의 번화가에서 미숫가루를 마시며, 읽고 싶던 작가의 신작을 ,한국 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과 여유를... 사심 가득 담아 세부에 계신 많은 한국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얄라 몰 2층의 의류매장 H&M 왼쪽 긑으로 난 통로로 나가 건널목을 건너면 졸리비 건물 2층의 디저트카페 에이플러스로 바로 연결된다. 맞은편에 맛있는 한식당 '소문난 막창'이 있어 한식으로 식사를 하고픈 분들의 연결 동선도 좋다.
취재를 진행하며 얼굴을 익힌 에이플러스 Jay 사장께 요청했다면 아마도 읽고 싶은 책을 빌려다 단숨에 읽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책 한 권을 다 읽기 위해서 서너번은 더 에이플러스를 찾아가 미숫가루나 커피를 곁들여야 할 텐데... 그 시간이 벌써 기다려지는 즐거움이 된 까닭이다. 완독 후 타깃으로는 무라카야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눈독들이고 있다.
■ 카페 에이플러스 : 032-231-4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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