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새해 첫 아침 돌고래를 보았다. 짙은 잿빛,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의 수억 물결 속에서 더욱 진한 잿빛을 띠고 매끈해 보이는 그들은... 새해? 첫아침? '그딴 건 집어치워라 그저 맹렬하게 이 아침을 살아낼 뿐이다'라는 듯 부지런히 유영한다.
바다는 무섭게 넓고, 그 속에서 자유로운 돌고래는 왜소하고, 배 위에 서서 그것들의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올라오길 바라보는 사람은... 보잘 것 없다. 그중 이토록 새까만 바다가 무서워, 물결의 움직임이 두려워 일어서지도 못하는 나는... 보잘 것 없는 중에도 하찮다. 저 앞에 섬이 보이지만, 배는 미친 듯 흔들리고 나는 아무래도 죽을 것 같다.
올해 첫날 오전 6시 즈음 호핑을 나선 배 위에서 끄적인 메모입니다. 세부에서 새해를 맞는 기념으로 12월 30일 보홀 여행을 갔던 저는 묵었던 리조트 사장님 내외의 배려로 새해 첫 아침 호핑을 나서는 배에 올랐습니다.
사실 제게는 배 공포증이 있었습니다. 검푸른 물결과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이 무서워 세부생활 7년간 취재로 호핑 배에 오른 한번을 빼고는 놀이를 위해 스스로 배에 오른 적이 없었죠. 하지만... 그런 제 사정을 모르시니, 투어 프로그램중 호핑을 제외했던 제게 신년선물처럼 호핑을 제안하시는 그분들의 호의를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그날의 배타기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어 보홀의 꽃이라는 버진아일랜드에 배를 델 수도 없었답니다. 그 흔들리는 배 위에서 새해고 뭐고 다시 땅을 밟는 게 제게는 가장 급한 희망사항이었습니다.
그리고 360여일이 흘렀습니다.
제게는 그동안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해냈다는 놀라움과 대견함에, 두 번째엔 진짜 내가 한 거 맞나 싶은 확인에, 세 번째는 바다 속 작은 물고기의 재빠른 움직임과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 배를 타야 합니다. 다이빙이 흥미로와 자꾸 배를 타고, 물속을 조금 엿보고 나니 쉼 없이 밀려오는 물결과 그 위에서 흔들리는 배에 대한 두려움이, '배 공포증'이라 여기던 무서움이 점차 옅어졌습니다.
'배를 타는 게 자동차를 타는 만큼 쉽다'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배가 무서워 오르기를 꺼리지는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서뜻 뱃머리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 올 한해 저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이제 한 장 남은 달력, 맨 밑 한 줄만 남기고도 올해를 보내는 것이 그다지 서운치 않음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보다, 앞으로 시간 속에서 '나는 또 어떻게 변할까'하는 기대의 마음을 알게 된 덕입니다.
지난 2017년 한해 독자님은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를 가지셨나요?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면 그것이 스스로 대견해 기분좋아지는 그런 변화이기를 바랍니다.
국제 정세와 필리핀, 대한민국의 흔들림 속에 보낸 한해였습니다. 새로운 한해에 대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의견 역시 지구촌 곳곳과 이곳 필리핀, 그리고 대한민국은 '격변과 격동'의 시간 속에 있을 것이라 합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는 이러한 외부 세계의 변화와 움직임을 더욱 민감하고 거칠게 피부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까닭에 새로운 365일의 시작 앞에 희망을 품지만, 또 한편으로는 희망과 함께 올 시련에 마음 단단히 먹고 대비해야 합니다.
다가올 365일 또한 순하고 만만한 친구는 이닐테니까요.
어느 날은 햇살이 쨍쨍하고, 어느 날은 바람이 솔솔 불고, 어느 날은 매운 한파를 만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한해는 교민연합뉴스 독자님 모두, 방 안에 놓은 난 한 촉을 돌보듯 나를 돌보는 한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제의 빛보다 더 청정해진 잎색에 즐겁고, 병아리 부리처럼 움튼 새 잎순에 기특해 하듯. 나를 세심히 살피고 나의 변화를 격려하고 기특해 하는 한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밖에서 천둥이 치고 비바람 몰아치더라도...
2017년 12월 마지막에
교민연합뉴스 편집책임 오윤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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