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하는 필리핀 학생들이 그곳에 있다!
'제 3회 한국어 스피치 대회' 예선
"지금 많이 떨려요?" "네? 아 네."
"떨려요 무슨 뜻인줄 알아요? 의미 meaning..." "알아요. 조금 떨려요."
자신의 이름을 '구장미'라고 말한 필리핀 여학생이 약간 상기되고 긴장된 표정으로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내 이름은 로즈(Rose)예요. 패밀리 네임은 아우구스틴이어서 거기서 '구'를 같은 사운드라 썼어요. 그래서 내 이름은 구장미입니다."
인터뷰에 응하는 학생이 더 긴장할까봐 연신 미소를 잃지 않던 심사위원들이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한 발음의 한국말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무슨 음식 좋아해요?" "떡볶이와 김밥입니다."
"만들 줄 알아요?" "몰라요. 먹는 거만 좋아요."
"한국 문화 좋아해요?" "음악요. K-POP 좋아요. 빅뱅 지드래곤 아주 좋아해요."
"남자 친구 있어요?" "네 있어요, 필리핀 남자친구. 하지만 저의 한국 남자친구는 지드래곤입니다."
심사위원과 구장미 학생 모두 웃음이 터져 한동안 말이 끊겼다. 이내 심사위원 한 명이 짓궃은 질문을 던졌다.
"필리핀 남자친구랑 한국 남자친구 지드래곤 중에서 누구랑 결혼하고 싶어요?"
"음~ 지드래곤 너무 사랑하지만, 결혼은 다음에 필리핀 남자친구와 할 거예요."
다시 웃음이 어이지고.
이제 한 문장을 들려 줄 테니 잘 듣고 따라해봐요.
"우리 집에서 닭과 돼지를 키워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구장미 학생이 이내 날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집...에서... 달과...대지를...키어여."
필리핀 대학생 대상 한국어 스피치 대회 예선 치러
지난 9월 13일 라훅에 위치한 세부한인회 사무실에서 뜻 깊은 생사가 진행되었다. 제 3회 한국어 스피치 대회 예선이 그것이다.
세부 속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하기 위해 치러지는 '한국어 스피치 대회'는 한국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는데, 세부 한인 여성회가 주관과 진행을 맡고 있다.
한국어 스피치 대회는 필리핀 대학 혹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필리핀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일차 예선에선 자기소개 및 질문 응답식의 심사가 이루어지고, 여기서 선발된 학생들이 결선을 갖게된다. 한국어 스피치 대회 최종 우승자에게는 한국 왕복 항공권과 한양대학교(연수 대학은 상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에서 진행되는 3주간 한국어 어학연수 자격과 체류비용 등이 지원된다.
이번 제 3회 대회 예선에는 10여 명의 필리핀 학생들이 참여했다. 대부분이 여학생들이고 남학생은 단 2명이어서 한국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여학생들에게 더욱 지지를 받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작년에도 한국어 스피치 대회 예선 심사를 봤고, 올해 역시 심사를 봤는데 확연히 작년과는 다른 수준에 놀랐습니다. 예선 참가자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너무 많이 향상되었어요." 김여훈 여성회 부회장의 말이다.
작년 만해도 이 대회 예선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우선 한국어를 읽고, 발음에 맞춰 기본적인 쓰기 정도는 가능했지만, 인터뷰 식 질문에 들어가면 문장이나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한국어가 규칙에 따라 발음과 소리가 정해지는 과학적인 문자이기 때문에 글자와 소리를 익히는 언어학습이 다른 언어에 비해 효율적인 까닭에 읽기까지의 과정이 용이하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려면, 수많은 단어의 의미를 익혀야 하고 영어와는 다른 한국식 어순을 익히고, 받침 혹은 발음 공식에 맞는 조사의 사용을 알아야 하는데, 올해 예선을 치른 학생들은 그 부분에서 월등하게 향상된 수준의 대화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한류문화 영향으로 예선 참가자 한국어 수준 크게 향상되어
"정말 K-POP과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이 크다고 여겨지는 대목이에요. 우리 한국학생들이 미드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하듯, 지금 여기 세부의 학생들은 한드를 보면서 한국어에 무척 친근해지고 우리가 팝송의 가사를 익혔듯, K-POP 노래들의 가사를 적고 따라 부르고 있는 거죠." 김부회장은 최근 몇 년사이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문화의 영향력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이번 예선 중 한 학생은 김치를 좋아하는데, 직접 담아 봤다고 하더라고요. 과정을 물으니 어설프긴 하지만, 배추를 소금에 절여 버무리는 과정을 열심히 설명하는 거예요. 그 얘길 듣고 있는데, 뭐랄까? 대한민국 내 나라에 대한 자긍심, 감동? 뭐 그런 감격이 밀려와 울컥 눈시울이 젖어들더라고요. 20살 안팎의 한국 여학생중에 김치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그런데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젊은 세계인들이 지구 곳곳에서 우리 노래를 흥얼거리며 좋아하는 나라의 음식인 김치를 만들어 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29일 본선대회 한국 교민들의 관심 당부
문화의 침투력은 무섭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서서히 스며들며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한류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우리 교민사회에도 큰 장점이자 이미지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 세부 로컬 사회가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나 한국 관광객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 역시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다. 몇몇의 잘못된 행위가 한국인 전체를 대변하듯 왜곡된 까닭도 있고, 우리 역시 '한국인의 이미지 업'을 위한 노력에 스스로 무관심 했던 이유도 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젊은이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 주역들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친근감을 표현하고 있다. 한류문화를 통해 자발적으로... 그렇다면 이제 우리 교민사회도 이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닐까. 내 언행을 조금 돌아보고 단속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눈빛에 미소를 전하는 간단한 눈인사부터 시작하면 어떨가.
제 3회 한국어 스피치 대회 예선을 통과한 6명의 경합자가 오는 9월 27일 토요일 오후 2시 UC(유니버시티 오브 세부) 바닐라드 캠퍼스 시청각실에서 결선대회를 치른다. 물론 당장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일수도 있지만, 한국을 좋아하는 필리핀의 다음 세대들이 그곳에 있다.
그들은 어쩌면 우리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인생을 설계할 수도 있는 우리 자녀들의 친구이자 선배 그리고 이웃이다.
만약 당신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27일 대회장을 찾아 힘찬 격려와 뜨거운 박수로 그들을 응원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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