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 in Korea' 한국 전통문화 전시체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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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뜨겁게 박수쳐 격려해야 할...


'자화자찬'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는 한자어로,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칭찬한다는 말이다. 웬만한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 쉬운 사자성어를 풀이까지 곁들이며, 늘어놓는 까닭은 본 지면을 빌어 실컷 '자화자찬'을 하고자 함이다.
사실 자화자찬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약간의 '빈정'기를 곁들인 비꼼의 표현으로 쓰인다. 하지만 조금만 돌려 생각해보자. 얼마나 잘했으면, 얼마나 기특하면 스스로 넉넉히 칭찬을 할 수 있겠는가.

지난 '제 4회 세부시티 한국의 날' 행사의 부속으로 'Fall in Korea 한국 전통문화 전시체험전'이 SM몰 3층에서 진행되었다. 전시와 공연이 이루어지기까지 안팎의 많은 지원과 도움이 있었지만, 세부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평범한 한인 여성들이 숨겨두었던 자신들의 기량을 꺼내고 꿰어서 만들어낸 보석 같은 행사였다.
세부한인여성회는 이번 전통문화 전시체험전을 준비하며, 조용히 재능을 숨기고 살던 옥구슬 같은 인재들을 찾아냈다. 이렇게 찾아진 인재는 한지공예가 김미경 씨, 전통 다도 문화시연가 이경희 씨,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학 때부터 풍물패로 활동하다 손을 놓은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꽹가리를 잡은 김미용 씨까지.
'한국에 풍덩 빠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전통문화 체험전은 소박하지만 우리 문화를 알리자는 한 뜻으로 뭉친, 우리 이웃들의 조용한 재능기부를 통해 그 첫 발을 떼었다.

먼저 수개월 전 세부에 터를 잡은 김미경 한지공예작가는 전통 한지로 만든 인형과 소품, 가구와 스텐드 등등의 작품들을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왔다. 빠듯한 시간에 맞춰 어렵게 세부로 모셔온 한지 작품들은 체험전시전이 열리는 사흘간 전시장의 꽃으로 자리매김했다.
"처음엔 전시장소를 보고 솔직히 속이 상했어요. 작품의 컨셉이나 내용에 맞춰 전시공간을 제대로 살리는 것도 중요한 역할인데, 단지 테이블 몇 개를 이은 공간에 작품들을 올려놓는 수준이었으니까요." 한국문화를 알리자는 취지에 맞춰 작품을 내놓았지만, 한국이나 다른 해외에서 전시를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취급(?)을 받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자식같은 작품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쓰리기도 했다며 김작가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서운한 속내를 접고 전시 결정을 '아주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다독일 일화가 전시 중에 있었다.
"어떤 로컬 할머니였어요. 한지로 만든 작은 서랍장을 보시고는 꼭 사시고 싶다고 요청하시더라고요. 한지작품들이 이곳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보는 것보다 고가의 가격이기 때문에 판매를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정말 옛날 우리 외할머니처럼 치마 속 속바지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시는 거예요. 지갑을 열어서도 카드 포켓 하나 하나에서 반듯하게 접어 숨겨두었던 지폐들을 일일이 꺼내니 2,000페소가 되는 거예요. 물론 서랍장의 가격은 그보다 높았지만, 너무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께 건네 드렸어요."
김작가가 그때 느낀 것은 '사람은... 같구나'란 동질감이었다고 했다. 인종과 문화가 다르지만, 그 깊은 곳을 헤집어보면 같은 마음이 있다고 느껴지고 난후,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감사하는 세부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 마냥 정겹게 여겨진다며 웃음지었다.

한국다도의 예와 멋을 돋보이기 위해 세부스터디 이경희 원장은 흰 저고리에 자주빛 치마를 매치한 고풍스러운 한복을 입고, 한국 다도를 시연했다.
한국 다도 시연 내내 바른 몸가짐과 부드럽지만 엄숙한 표정을 이어갔지만, 속사정은 고생이 심했을 터다. SM몰 실내이긴 하지만, 병품을 쳐 삼면을 막은 바닥에 긴 한복을 입고, 좌식 자세로 앉아,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찻물을 다루는 과정이 어찌 녹록할까.
"한국 다도의 특징은 절제와 멈춤, 기다림과 여백을 통해 차를 즐기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바른 자세를 여미고 마음을 가다듬고 찻물을 따를 때, 차는 몸을 씻어주고 마음을 씻어주게 됩니다. 다도를 시연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여기서 다도시연을 하면서 저 자신도 다시 한번 배우는게 많았어요. 더위와 주변의 소음에서도 차향에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으니까요." 이경희 원장은 앞으로도 세부에 거주하는 많은 한국 교민들과 찻상 앞에 한국 다도를 함께 즐길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덩 덩 덩따 쿵따!' 세부 한인성당의 초등학생들이 꾸린 소리패가 기본 굿거리 장단에 맞춰 연주를 시작한다. 북, 장구, 징의 소리를 조율하는 꽹가리는 김미용 선생님이 맡았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기증받아 국악기가 세부 한인성당에 들어온지 이제 2달 남짓. 그동안 아이들은 다섯 번을 만나 악기를 만져보고 직접 채를 잡았다고 한다. 정말? 의문이 들 정도로 단 몇 번의 연습만으로 익혔다는 굿거리, 자진모리 장단을 아이들은 신명나게 두드렸다. 관객들의 반응도 가장 뜨거웠다. 공연 이후 관객을 직접 데려다 악기를 다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북과 장구를 배우겠다고 나선 필리핀 친구들이 줄을 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초등학생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면서 '우리가 한국사람은 맞구나'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번에 공연한 아이들 중 네 명이 세부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에요. 그런데 저것 좀 보세요. 굿거리 장단을 치면서, 고개를 움직이는 품새를... 한국인이니까 저런 품새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미용 씨는 성당에서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의미로 조촐히 풍물을 가르칠 예정이었는데, 이번 공연을 보고 배우겠다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걱정이라며 활짝 웃었다.

다행이도 이번 행사에 참가한 김미경 작가와 이경희 씨, 김미용 씨는 배우고자 하는 이웃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가르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한국문화를 이곳 세부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배우고 익힐 기회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시한번 우리 주위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숨겨두었던 재능을 펼치고 우리에게 보여줄 숨은 재인들이 아직 우리 주위에 많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스로를 꺼내 보이고 그 재능에 힘껏 박수치고 칭찬해주고 열심히 배우기도 하는 세부 한인들 사이의 '자화자찬' 문화.
그 신명나는 잔치마당이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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