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공동묘지 빈민촌 무료급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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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따뜻한 마음의 손길

일주일에 한두번씩 아얄라 부근을 지나면서도 높다랗게 뻗어 올라가는 빌딩 숲만 보았지, 그 곁에 낡고 허물어져가는 버려진 공동묘지가 존재하는 줄 몰랐다.
마침 나섰던 한국 나들이 중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다룬 필리핀의 빈민층과 그들을 돕는 한인들을 조명할 때도 '아 마닐라에는 공동묘지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고만 생각했지, 내가 살아가는 세부에도 공동묘지를 집 삼아 살아가는 빈민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지난 1월 14일 토요일 오전 시부한인교회가 매주 토요일 빵과 닭죽을 나누어주는 현장을 함께 방문했다. 극빈곤층의 현지인들이 사는 곳은 '세부 중국인 공동묘지(CEBU CHINESE CEMETERY)'라고 했다.
'시내에서 멀리 가겠구나' 짐작하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쥐고 있는데... "여기서 왼쪽입니다. 저기서 오른쪽으로 들어서고요... 다시 오른쪽으로... 자! 도착했습니다."
조수석에서 길을 안내해 주던 김낙준 장로가 출발 10분도 채 안되어 휴먼 내비게이션 역할을 종료한다. 대로변에서 약 10m 들어왔을뿐인데 이곳은 밖의 세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공동묘지입니다. 중국인들은 부모나 조상의 무덤을 집같이 꾸미던 특징이 있었어요. 관을 모신 주변으로 햇빛과 비가 들지 않는 건물을 세웠었지요. 그리고는 휴일이면 가족들과 묘지를 찾아와 이곳에서 나들이 같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효'라고 여겼던 거지요. 세월이 흐르며, 오래되고 낡은 이 묘지에 관리의 손길이 끊이면서, 일부 자손들은 시신이나 분묘를 파내어 이장했고, 일부는 그대로 남겨두고 아예 세부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간 자손들도 있답니다."

죽은 이들의 자리에 기대어 사는 가난한 사름들

토요일 자선 급식 봉사를 총괄하는 김낙준 장로의 설명이 이어졌다.
"주인이 없어지니, 객들이 찾아왔죠. 왜 하필 공동묘지로 들어왔냐고요? 집 없는 거리의 사람들에게도 가장 필요했던 것은 비를 가릴 지붕과 추위를 피할 벽이었으니... 그 속에 중앙을 차지하는 관이나 묘는 그닥 개의치 않았다네요. 이렇게 산사람과 죽은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지도 벌써 수십년 째랍니다."
하얀 닭죽이 뽀얀 김을 내며 펄펄 끓고 있는 곁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마을 회관 격으로 쓰이는 제법 넓고 웅장한 무덤터 주변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매주 토요일 11시에 배급되는 닭죽과 빵 그리고 그 외의 기부 물품을 받기위해 늘어선 줄이 무덤 주위를 한 바퀴 돌고도 끝없이 이어진다.
한인 봉사자들이 풀어놓는 물품들을 엿보던 아이들의 얼굴 얼굴에 미소가 활짝이다. 빵은 물론 다른 때보다 과자와 음료가 더 있고, 풍선과 예쁜 스티커, 부채까지 보이는 까닭이다.
마침 한국에서 다니러온 천안시 성환읍 우신교회(엄기수 목사) 단기 선교팀이 함께 봉사를 나와 나누어 줄 선물이 더욱 푸짐하게 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매번 치르는 행사기에 물품을 나누어 주는 과정은 원활히 진행되었다. 아이들 먼저 줄을 서서 아이들이 하나씩 빵과 다른 물품들을 받고나면, 그 다음엔 어른들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매번 아이가 받아온 물품을 한쪽에 숨기고 두세번씩 다시 줄을 새워 또 받게 하려는 얌체 어른들의 실랑이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너 벌써 두번째 받았잖아!' 하고 현장에서 지적받아도, 아이나 어른이나 그냥 혀 한번 낼름 내밀고 슬쩍 자리를 피할 뿐이다.
다음엔 집에서 그릇들을 가지고 나와 맛있게 끓은 닭죽을 한 사발 씩 퍼간다. 혹 큰 그릇을 가져가면 더 많이 받아올까 약은 꾀를 쓰는 이들도 있지만, 하루 이틀의 봉사인가, 커다란 국자로 한 국자씩 공평한 배분이 이어진다.
시부한인교회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아얄라몰 근처의 공동묘지에서 그곳에 사는 빈민들에게 닭죽과 빵 한 덩어리를 나누어 주고 있다. 종교가 같지 않거나 혹은 신자가 아니라 해도 만약 이 봉사에 관심 있다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고 있다. 사견이지만 현장에 함께 서서 땀 흘려 봉사하는 이들과 뽀얀 닭죽을 맛나게 떠먹는 아이들을 직접 보니, 상설 봉사의 자리를 만들어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찾아가는 행사를 주최하는 시부한인교회가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교회이건 종교이건 그런 건 상관 없다.
먼 타국에서 잔뿌리를 내리고 사는 한인들이 오늘까지는 무관심 했지만, 혹시 내일은... 함께 사는 현지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을 때, 먼저 실천하고 있는 그들이 있어 크게 작정하지 않고도 쉽게 찾아가 함께 팔을 걷어붙일 동료가 되어 줄 것이다.


■ 무료급식봉사 참여문의 0927-692-4831 / 070-4184-8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