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행기⑨ : 원헌드레드 아일랜드(One Hundre

필자는 당시 여유 있는 바기오 여행일정에 이어 루손 섬 남쪽으로 이동하여 '팡가시난' 국립공원 '원헌드레드 아일랜드'로 향했다. 이곳은 정확히 123개의 섬이 총면적 1.884핵터, 섬 군데군데에 옹기종기 모여 자연의 소리 없는 함성으로 숨겨진 비경이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선 해마다 4월15일부터 5월15일까지 '여름해양축제'가 열린다. 필자는 이 축제기간에 맞춰 여행하게 되었는데 이 섬에 도착하기 전, 작은 시골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일환으로 '사봉'(Sabong:닭싸움) 구경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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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만난 '사봉' 참관기

필리핀에서 보통 서민적 관심과 인기 있는 전통적 게임이자 놀이문화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 '사봉'은 동네 마을에 작은 사각의 정글 닭 싸움장이 마련되고 오랜시간 정성껏 기르며 애지중지하던 닭을 피가 튀기는 싸움장으로 출전시키는 날이기도 하다. 이 게임에는 주변 동네 사람들이 관중이 되고 그 중 싸움닭을 출전할 사람들이 몰리고 구경꾼들이 북적이며 잔치 분위기 시골장터를 방불케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구경꾼들은 어느 닭이 이길 것인가를 면밀히 보고 난 다음 심판에게 몇 백 페소의 돈을 건다. 물론 이기는 싸움 닭 주인은 한 몫에 큰 돈을 상금으로 받는다. 필자가 재미있게 본건 바로 '싸움닭'이다. 경기 전 이 닭들은 다리에 예리한 칼을 묶어 흉기를 가진다. 이 닭의 주인들은 사각 링 안으로 들어와 싸움닭을 구슬리며 파이팅을 할 것을, 비단 같은 닭 몸을 쓰다듬어주면서 주문한다. 경기 전에 싸움 닭 파트너들은 서로 금방이라도 이길 기세로 목의 깃털을 세워 달려드는 시늉을 한다. 심판의 사인에 곧 싸움이 시작되면 싸움닭들은 날센 동작으로 상대를 향하여 공격한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몸을 날려 부딪치다 오느 한쪽 닭이 힘에 눌리면 상대의 닭은 어느 사이 '나 죽었노라고...' 고개를 숙이며 전의를 상실한 태도를 취한다. 심판이 거듭 싸울 의사를 묻는 시늉을 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그 게임은 끝이 난다.

다른 게임이 곧 시작되자 이번 게임은 그야말로 승리 예측 불허로 두 싸움닭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만들다가 어느 한편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니 다른 한쪽 싸움닭 주인이 환호성을 지른다. 돈을 건 닭이 승자가 되자 곧 관객들의 함성과 더불어 축제는 더욱 무르익어갔다. 일시에 닭을 잃은 주인은 풀이 죽어 한쪽 구석으로 숨어들어가듯 하다가 이 나라 사람들의 기호 음료인 '래드 호스' 맥주 한 병으로 패자의 쓴 기분을 달랜다. 그리고 동네 친구들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면 죽은 닭의 부위 부위를 싹둑 살라 한 토막씩을 나누며, 금세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는 이 섬을...

이 '원헌드레드 아일랜드' 섬들은 마닐라에서 루손 북쪽으로 약 214킬로미터 떨어져있고 루손중부지역 '다구판' 시티에서는 38킬로미터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여기를 가기 위해서는 '알리미노스(Alaminos)'란 지역에 도착하여 다시 트라이시클이나 지프니로 약 20분 정도 이동하여 '루갭'(Lucap:선착장이 있는 곳)에 도착한 다음, 다시 방카를 이용하여 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지역의 섬 중에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발되어 공개된 섬은 3개 섬으로 Governor, Quzon and Children's Island가 있다.

필자는 당시 'Governor'섬을 들어갔는데 이 섬들은 산호섬이 풍화작용으로 기암 괴석들이 눈길을 끌었고 조그만 모래 해수욕장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어 편안한 자연의 품을 한적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시간을 가졌다. 이 섬엔 특히 해상공원이 있는 지역으로 높은 전망대에서 주변 사방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경관을 만끽 할 수 있다.

인근 섬에는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 자연 그대로의 섬의 풍취가 살아 넘실거리는 파도와 맞장구를 치며 섬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의 한적한 고요와 파도소리, 때로는 머리 위로 나르는 갈매기떼를 바라보며 긴 '묵언의 수행'을 즐겼던 기억이 깊게 남아있다. 아는 지인은 '원헌드레드 아일랜드'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필리핀을 사랑하셔서 외롭고 넓고 푸른 태평양 한복판에 '네가 너를 사랑하노라'하고 한 줌의 흙을 흩뿌렸더니 그 흙이 지금의 섬이 되었다."

'원헌드레드 아일랜드'는 특별히 아름다운 곳이나 볼거리나 먹거리가 풍부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숨소리가 간직되고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청정지역으로서 간직됨이 더욱 빛나보이는 곳이었다. 필리핀은 약 7307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지만 이곳은 그중 다시 123개의 크고 작은 섬나라로 필리핀 속의 또 하나 작은 필리핀으로 연상되기도 했다. 이 곳은 왁자한 호핑 투어보다는 조용하게 가족이나 연인들의 여행지로 조용하고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선사하는 여행지로 더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몸과 영혼을 뉘이고 한나절 푹~ 쉬어가게 했다.

글 : 등필(이윤주)
1989년 '현대시학' 등단시인 자유여행가 현 A.O.G 필리핀 비사야지역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