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행기⑯ : 네그로스 오리엔탈 두마게티 - 친절한

때는 바야흐로 어느 덧 2016년도가 저물어가는 올해 마지막 달,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필리핀 여행기를 연재한지도 반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오는 새해 벽두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다.

아무쪼록 올해 얼룩진 과거를 묻어버리고 우리 세부 교민들의 희망찬 아름드리 꿈이 더욱 풍성하게 열리는 한 해이기를 소망해보면서 올해 마지막 여행기로 가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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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게티'란 도시 이름의 뜻은 바로 '친절한 사람들의 도시'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곳을 필자가 찾은 때는 약 4년 전 쯤이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길은 세부에서는 세부섬 최남단 닐루안까지 약 3시간 버스로 이동한 후 다시 배를 타고 약 20~30분쯤 이동하여 '두마게티'에 도착하는 방법과 마닐라에서는 국내선 비행기로 약 한시간 남짓 비행기로 이동하여 도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도시는 네그로스 섬 남동부에 위치한 유일한 항구도시이면서 교육도시로 잘 알려져 있고 세부 섬에서 민다나오로 연결해주는 교량적 위치에 있는 오랜 역사의 흔적을 살필 수 이쓴 고도이기도 하다.

필자는 먼저 '두마게티'에 도착한 후 먼저 둘러 본 곳은 실리만 대학교였다. '두마게티'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8개 공립 초등학교와 8개 공립 고등학교 그리고 4개의 종합대학교와 그 외 수십 개에 달하는 칼리지가 명실상부한 교육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관심이 단연 실리만 대학교에 있는 것은 이 학교가 최초 개신교학교로서 1901년 미국 개신교 전도사인 'Dr Horace B Silliman'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교육의 초석으로 현재 이 학교는 6천명의 학생과 500여명의 교직원 그리고 61만 평방미터의 캠퍼스 속에서 바로 옆 바다와 어깨를 겨루며 21세기를 지향하는 특성화학과(해양분야)를 개설하여 나름대로 학업에 열정을 불태워 나가고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100년의 역사를 훌쩍 넘은 역사의 흔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잘 정돈된 캠퍼스와 연구와 향학을 중심으로 한 학교 행정이 다른 지역 어느 대학교보다 우수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가 필리핀 여러 대학교를 방문하여 보았지만 실리만 대학교처럼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뭔가 깊은 학문의 도장처럼 느껴진 학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나본 몇몇 학생들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비전을 학교를 통하여 성취 하고자 하는 꿈들이 세월을 낚고 낚아 온 고목의 정원수처럼 묵직하게 커져 보이는 희망을 발견하였다.

이어 돌아 본 '두마게티' 시내 퀘존 공원 주변에 있는 '두마게티' 성당 옆 '벨타워(Bell Tower)'이다.
이곳은 일명 '두마게티 도시의 심장'이라고 불리워진다. 18세기 무렵 적 침입이 있었을 당시 벨을 울리는 감사탑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도심 한복판 기도 처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겉으로 보아도 하나하나 올려쌓은 석탑 같은 종 모양의 타워는 400여년 세월의 흔적이 외벽 질감을 통해 말해주고 있었고 이 나라 국교인 가톨릭 신앙의 진원지인 것처럼 필자가 찾은 그 시간에도 촛불 신앙은 꺼지지 않고 벨타워 안팎 자욱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 믿음의 세계는 우리 인간들의 능력으로서는 측정할 수 없는 가공할 영역의 분야이다. 하나님이란 신의 존재를 통한 믿음으로 이끄는 역사는 인간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며 그 초월적 존재이신 그 분의 능력과 통치의 역사를 통해 이 시대가 존재하며 그의 백성들이 오늘날도 그 분의 위대하심에 고개 숙여 경배하며 살아가고 있는 진지한 모습은 여행객으로서 더욱 숙연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필리핀이 아직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무지한 계층들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두마게티' 사람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보았고 차분하고 조용한 교육도시로서 진면목을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글 : 등필(이윤주)
1989년 '현대시학' 등단시인 자유여행가 현 A.O.G 필리핀 비사야지역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