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행기(22) 인간 군상(群像)을 느끼다, 수리가오

민다나오 섬 북동쪽 끝, 수리가오(Surigao)란 작은 도시 하나가 있다. 이곳을 가는 길은 마닐라에서 '수리가오'행 국내선 비행기 노선이 있고 인근 세부에서도 항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배편은 수시로 운행되고 있어 주변 지역과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수리가오'는 인구 약 16만 정도의 규모로 항구, 무역 중심도시로 보통 사람들은 주로 어업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이 지역에 과거 스페인이 점령시절 총독 관저인 '카사 레알'(Casa Real)가 있었던 곳으로 작지만 먼 멀리 파도를 부르며 긴 역사를 머리에 쌓아올린 이곳을 다녀 온지 수년은 지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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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물론 많지만 않지만 한국 사람들이 몇몇 살고 있다. 필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필리핀 곳곳에 없는 곳 없이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그리고 왜 여기까지 이런 곳에와서 살까'하고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답을 알기까지 불과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지인들과 결혼하여 아내들의 고향에서 정착하다보니 필리핀 전역 구석구석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대개 국제결혼을 하여 한국 사람이 현지에서 사는 경우는 연애결혼이 많아 한국보다는 아내들의 고향이 그들의 제2의 고향 삼아 삶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 '수리가오' 사방 비치에 현대식 모던 스타일의 '피에스타 리조트'가 있는데 이 사장님의 경우가 그러하고 '수리가오' 다운타운에서 크고 작은 사업을 하는 한국사람 모두 아내들 고향을 좇아 이곳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난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담 아내의 나라, 아내의 고향에서 사는 것이 차라리 아름다울 수가 있겠구나'...

필자는 이곳에서 '피에스타 리조트'에서 하루 밤을 보냈는데 여기 사장님의 인생사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사장님은 현재 아내를 만나 이주하기로 결심을 하고 아내의 고향에서 리조트를 건축하면서 갖가지 고생한 끝에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리조트는 바로 앞에 바다를 조망하며 제법 규모도 있고 건축 조형미와 디자인이 있는 한국형 리조트를 건설하였다. 현지식 리조트가 아니라 한국사람 냄새가 나는 리조트로 꼼꼼한 설계와 평면구성이 돋보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자가 당시 방문 시점에는 사업 초기였으나 지금은 자리를 잡아 수리가오 지역에서 단연 으뜸가는 리조트로 성장하여 '수리가오'의 '피에스타 리조트'는 이 지역의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단연 '수리가오'에서 유일한 여행지는 순백의 섬, 파도를 부르는 섬, '시아르가오'(Siargao) 섬이다. 큰 섬, 민다나오 그리고 그 중에 내륙수리가오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방카를 타고 도달 할 수 있는 이곳은 오토바이로 작은 섬 일주하는 특별한 코스가 있다. 섬에서 섬으로 투어는 또 다른, 색다른 여행의 진미를 일깨워준다.

이 섬 안에 탁탁(Tak Tak) 폭포가 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폭포인데 낙차하는 물들이 부서지는 모습이 다른 폭포와 달리 크게 흩어지며 커다란 물 쟁반에 안기는 모습은 필자의 눈에는 특이한 현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약간 급경사가 아닌 곳에는 사람들이 기어오르는 탐험을 즐길 수 있는 기암절벽 코스도 있다. 온몸이 오싹한 한기가 한동안 폐부를 시원케 한다.

이 섬은 북쪽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아래 수리가오 섬을 머리에 인 광경이다. 마치 '수리가오' 섬을 지키는 전초병이라 할까... 이런 곳이 과연 필리핀에서 몇 군데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고풍 속에 형성되어 온 작은 섬의 풍광은 짙푸른 바닷물 함께 깊숙이 잠긴 암석의 종아리가 오랜 세월 깎이고 깎여 앙상한 가지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큰 섬 안에 또 하나의 섬, '형제의 섬'이라 할까... '부자의 섬'이라 할까...

아무튼 섬과 섬으로 이어지는 교류는 사람을 통해 친숙한 발걸음이 그 날도 계속되고 있었다. '수리가오' 지역에서 느낌은 활발한 정서가 있었다.

느리고 조용하기 보담은 뭔가 바쁘게 활기차게 움직이는 보폭이 다른 지역보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우주 공동체라는 실감이 여기서도 더욱 강렬히 다가왔다. 이곳에도 세계 전역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데 많은 외국인들을 만난다는 것은 일상적인 삶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젠 자국의 영토 개념이 아니라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영토인 가운데 그저 여기 저기 섞여 사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21세기의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이곳 '수리가오'에서도 볼 수 있었다.

글 : 등필(이윤주)
1989년 '현대시학' 등단시인 자유여행가 현 A.O.G 필리핀 비사야지역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