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겐 '민도로 섬'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것은 당시 주변 몇몇 사람들이 입에서 극찬한 '3가지가 아름다운 천국의 섬'이라고 해서 그곳을 여행하기 위하여 어쩌다 아주 작은 프라이빗 보트를 타고 가다가 정말 천국의 문턱까지 간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모년 12월 24일 성탄절을 맞이하여 현지인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1박2일 여정으로 가족들을 대동하고 나선 여행길이었다. 바탕가스 항구에 도착하여 배 시간을 알아보니 이미 마지막 행 노선 배는 떠난 상황이어서 어떻게 하나하고 망설이던 순간, 어수룩하게 생긴 현지인 한명이 다짜고짜 다가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형 방카를 타고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4명이 겨우 몸을 실을 수 있는 작은 방카(보트)를 타고 출발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도 작은 아이는 빨리 배를 타고 싶어선지 그냥 아무거나 타자고 졸랐고 큰애는 "좀 위험하지 않냐"며 그냥 바탕가스 시내에서 1박하고 아침 첫배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필자가 내일 현지인 교회 방문 일정을 감안하며 늦게라도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라 약간은 편치 않은 기분으로 작은 방카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벌써 해가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출발할 때는 파도가 거의 없었으나 배가 출발하여 중간 쯤 달릴 무렵부터 파도가 넘실대며 작은 보트 몸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위험한 상황이 감지되어 구명조끼를 찾았지만, 2명의 보트맨은 구명조끼는 필요없노라고 천역던스럽게 대답했다. 이미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이고, 우리가 탄 배는 작은 풍랑에도 거침없이 질주하며 멀리 보이는 민도로 아일랜드섬 불빛을 향해 달렸다. 그러기를 잠시 '아뿔싸!' 갑자기 보트의 엔진이 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섬칫 놀란 나는 '무슨 일이요?'하고 다급하게 물었더니 보트맨 왈 '가끔 이래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 순간 풍랑이 쳐서 바닷물을 뒤집어 쓰게 되자, 모두 놀라 어둠 속에 휘둥그레진 눈만 보이게 되었다. '아빠 얼마만 더 가면 되요?'라고 작은 아들 얼굴 표정이 사색이 되어 물어왔다. '아 저기 불빛 보이지? 이제 거의 다온 것 같아 조금만 참아보자.'라고 달랬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배는 다시 시동을 겨우 걸어 출발했지만 언제 다시 엔진이 꺼져 망망대해 한가운데 이 작은 쪽배가 서버릴지 모른다는 초조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탄 배는 이후 3번이나 엔진이 꺼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엔진이 꺼지는 잠시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절망의 시간이었고 우리 가족들은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애절하게 기도했다. 지금도 그때처럼 절박하게 기도해 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그야말로 천국의 문턱까지 다다른 시간이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민도로 아일랜드에 도착한 것은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던 부트맨의 이야기와는 달리 두 시간을 훌쩍 넘어 밤 9시경. 긴장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장소는 '레드 썬'이란 비치호텔이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지어진 이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지난 시간 악몽 같았던 기억들은 언제 달아나버렸는지 곧장 호텔방과 연결되 베란다로 나가 은하수가 부서져 내리는 밤하늘과 밤바다를 바라보며 추억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필자가 후일 이 민도로 아일랜드 여행담을 나눌 기회가 어느 지인과 있었는데 그 친구 왈 "진짜 무식하고 욤감했군요. 필리핀에서는 프라이빗 보트는 해진 시각 이후엔 절대 타면 안되요. 출발 전에는 그리 파도가 없었다고 하는데 보통 항구에 접안한 지역은 그렇게 파도가 없지만 바다 중앙으로 나가면 조그만 파도도 더 세게 치는 법이어서 조그만 배는 더욱 위험천만이에요. 그리고 구명조끼도 확인하지 않고 배를 타다니요. 참 필리핀 여행에 대해서는 초짜시네요. 프라이빗 보트맨들을 어떻게 믿고 탔어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물고기 밥이 될지도 몰라요."
친구처럼 지내는 그 사람은 나의 여행담에 거침없이 쏘아대고 정색하면서 주의를 일깨워주었다. 정말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온몸이 오싹해졌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여행 겸, 봉사활동 겸 간 그곳 민도로 섬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후일 필자는 필리핀 한국대사관이 주관하는 '안전사고 예방 수필 공모전'에 우리 가족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응모하여 입선하게 되는 작은 기쁨을 누리고 필리핀 한국대사로부터 상장을 받기도 했었다.
아무튼 민도로 아일랜드 여행 중에서 얻은 이야기가 나의 필리핀 여행기 가운데 읽는 독자들에게 작은 'TIP'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민도로 아일랜드 여행 본 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어가겠다.
글 : 등필(이윤주)1989년 '현대시학' 등단시인 자유여행가 현 A.O.G 필리핀 비사야지역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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